미국 달러 대비 동조화 강한 동북아 통화
中 위완화 강세는 원·엔 미래 보여주는 선행지표
日 정부, 엔화 약세 노리겠지만 반전 불가피
韓 원화도 엔화와 동조, 코스피 봄바람 불 것
대부분의 경우 경제 규모가 큰 국가가 역내 환율의 방향을 결정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가 역내 중심 통화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동아시아 통화의 동조화가 나타났다. 미국 달러에 대해 동아시아 통화가 장기 약세를 나타내는 흐름이 2025년 1분기까지 나타났고 2분기에는 동아시아 통화가 동반 강세를 보였다. 동조화에 균열이 생긴 것은 올해 7월부터다. 엔화와 원화, 대만 달러화가 미국 달러 대비 약세로 반전된 반면 위안화는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7월 이후 미국 달러 대비 엔화는 -8.0%, 원화는 -6.9%, 대만 달러는 -4.4% 절하됐지만 위안화는 2.3% 절상됐다.
일단 대만 달러의 약세가 눈에 띈다. 최근 원화 약세, 즉 원·달러 환율의 상승을 두고 한국 경제의 구조적 경쟁력 후퇴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성장률이 급락하고 외환 보유액은 부족하고 한국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자금이 해외로 이탈한 결과가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서사가 그것이다. 대만 경제는 정확히 한국의 반대편에 서 있다. 올해 국내 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5.7%에 달하고 2025년 3분기 경상수지 흑자는 GDP의 16.6%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외환 보유액도 한국보다 39% 많은 6002억 달러(약 883조원)에 달하고 있다. 통화가치가 펀더멘털만을 반영한다면 대만 달러는 강해져야 하지만 글로벌 주요국들 중 가장 약한 통화 축에 속한다. 대만 달러 약세는 역내 통화의 동조화라는 시각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통화 중 중국 위안화는 왜 강할까. 올해 1분기 1달러당 7.36위안까지 치솟았던 위안화 환율은 최근 7.06위안대로 내려앉았다. 위안화 강세를 미국의 폭력적인 관세부과로 증폭됐던 미·중 갈등이 완화하는 신호로 해석하고 싶다. 변화는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미·중 정상은 상호 보복관세가 포함된 무역전쟁을 향후 1년 동안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미국은 엔비디아의 H200 칩 대중 수출을 허용했고 중국도 희토류 수출 제한을 풀었다. 고율 관세부과와 이를 활용한 공급망 재편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비용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미국이 한발 물러서면서 이런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상호관세가 부과된 8월 이후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대에 도달했고 9월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한국 노동자들의 불법이민 스캔들은 ‘일할 사람’ 없는 미국 경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또한 미국의 적극적 기술 봉쇄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칩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내고 있다.
전면적 관세 부과를 통해 무역 역조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1930년대 대공황 직후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찾을 수 있다. 반면 무역수지 흑자국의 통화가치 절상(달러 약세)을 통해 무역 불균형 완화를 도모했던 사례는 1970년대 미국 리처드 닉슨 행정부의 달러 금 태환 중단 선언, 1980년대 플라자합의(일본·서독이 타깃)와 환율조작국 지정(한국·대만이 타깃), 2000년대 위안화 절상 압박 등 너무도 많은 사례가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이 부과한 관세는 무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미 교역에서 큰 흑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불균형을 완화하는 방법은 중국이 미국 상품을 많이 수입하는 것이다. 1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2017~2020년) 때인 2020년 1월 타결된 미·중 무역합의에서도 중국은 대두를 비롯한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늘리는 내용이 골자를 이뤘다. 궁극적으로는 내수부양을 통해 미국산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을 늘려야 하는데 위안화 강세는 이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위안화 강세는 대미 교역에서 큰 흑자를 보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 통화의 미래를 보여주는 선행지표일 수 있다.
위안화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한국 원화가 약한 것은 일본 엔화가 초약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상반기 1달러당 140엔대까지 하락했던 엔화 환율은 최근 155~157엔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엔화 약세는 지난 10월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의 출범과 무관치 않다. ‘사나에노믹스’로 불리는 신정부의 정책은 ‘저금리 기조 유지를 통한 금융완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사나에노믹스’는 2012년 출범한 아베 신조 내각의 ‘아베노믹스’를 계승한 것으로 보이는데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본다. 저금리 유지는 엔화의 약세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 아베 내각이 출범했던 2012년과 사나에 정부가 출범한 2025년은 환경이 전혀 다르다. 아베가 정권을 잡았던 시기 일본은 물가가 장기간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엔화 환율은 1달러당 80엔대에 머물러 있었다. 일본은행(BOJ)이 공격적으로 돈을 풀고 엔화 약세를 유도해 물가를 올리는 ‘리플레이션 정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셈이다. 현 상황은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에 도달해 있고 엔화 환율은 1달러당 150엔대까지 올라와 있다.
여기서 더 돈을 풀고 엔화의 추가 약세를 유도한다고? 그 결과는 인플레이션 압력의 강화다.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시킴으로써 실질 구매력을 보전할 수 있지만 일본은 근로소득이 없이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9%대에 달하고 있다. 연금 생활자에게 인플레이션은 독이다. 거의 고정된 소득으로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 물가 상승은 구매력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사나에노믹스’는 고령자가 다수인 일본 사회가 수용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엔·달러 환율의 하락 반전시기가 임박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역내 중심통화인 위안화는 이미 강해지고 있고 엔화의 반전도 임박해 있다면 원화의 추가 약세에 베팅하는 것은 리스크가 커 보인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다면 비달러 자산으로서 한국 주식이 가진 메리트가 커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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