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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에세이스트 |
첫 번째 북토크를 기억한다. 첫 책을 내고 처음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당시엔 내가 가진 운을 전부 써버렸노라 생각했다. 작가 지망생으로 글을 쓰던 단골 카페에서 작가가 되어 북토크를 열게 되었으니까. 다만 무명작가의 북토크에 누가 찾아올지 걱정돼 잠을 설쳤다. 그래도 한 명이라도 내 책을 읽어준 독자가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서 나는 밤새 선물까지 준비해 갔다. 우려와는 달리, 다정한 독자들을 만났다. 책과 삶과 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너무 벅차서 들뜬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내내 침착하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북토크를 마치고 나는 독자들을 배웅했다. 언제 또 내가 책을 내고 이런 자리를 만날 수 있을까. 독자들의 뒷모습까지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빈 카페에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한 독자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혹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1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남아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든다. “북토크 마무리까지 지켜보고 싶어서요. 마지막 페이지까지 마음을 다해 읽는 것처럼요.”
내 좌우명은 한결같다. 마무리를 잘하자. 좌우명(座右銘)이란 늘 자리 옆에 두고 지침으로 삼는 말이라던데, 작업과 관계를 비롯해 행하는 모든 일에서 나는 마무리를 잘하자고 언제나 다짐한다. 마무리를 잘한다는 건, 내게는 마음을 다한다는 말과 같다. 한결같은 초심, 진실된 진심, 정성스러운 성심. 초심과 진심과 성심, 세 가지 마음을 마지막까지 우직하게 다한다.
14년 차 작가로 영상과 활자를 오가며 여럿이 또 혼자, 작품을 만들어보며 깨달았다. 분초를 다투며 무언가를 창작하는 현장에서 열정적인 사람은 많지만, 마무리를 잘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얼마 없다. 초심과 진심과 성심을 한데 묶어 단단히 매듭지을 때에야 충실한 마무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은 지루하고도 지난하기 짝이 없다.
진부한 말이지만 마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마음이 가장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고 매 순간 흔들리니까. 흔들리는 마음을 몇 번이고 고쳐 잡고 단단하게 매듭짓는 일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듬고 또 다듬으며 조금이나마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첫 책을 쓰던 초심과 독자들을 배웅하던 진심, 마침표까지 정성껏 쓰던 성심이 여전한지 점검한다. 어딘가에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마음을 다해 읽는 독자가 있다는 걸 믿기에. 재능 있는 작가는 아닐지라도 충실한 마무리를 매듭지어 간다면, 훗날 내 작품이 새롭게 발견돼 읽힌다 해도 떳떳할 거란 긍지를 품는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박완서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겨우 십여 년을 써본 작가는 오늘도 다짐한다. 열심히, 마음을 다하자고.
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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