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3 (토)

    이야기들, 커피 풍미를 진하게 만드는 촉매 [休·味·樂(휴·미·락)]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커피

    편집자주

    열심히 일한 나에게 한 자락의 휴식을… 당신을 즐겁게 하는 다양한 방법, 음식ㆍ커피ㆍ음악ㆍ스포츠 전문가가 발 빠르게 배달한다.


    한국일보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가을, 유난히 커피 강연 의뢰가 많이 들어왔다. 커피 회사를 운영하며 로스팅 기본기와 열 전달 방식 같은 세미나와 수업을 15년 가까이 진행했다. 그러니 외부 강연이더라도 청중은 당연히 업계 종사자가 대부분이리라 예상했다. 강연 자료도 '좋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에 맞춰졌다.

    현실은 달랐다. 강연장의 대다수가 일반인이었던 거다. 내가 만나리라 예상한 업계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강의 방향을 즉흥적으로 살짝 틀었다. 준비한 자료를 설명하는 틈틈이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곁들였다. 한데 정작 청중이 눈을 반짝이는 순간은 '좋은 커피'에 관해 설명할 때가 아니라 몰라도 그만인 샛길 풍경을 들려줄 때였다. 남편들이 '커피하우스'에 빠져 밖으로만 나돌자 성난 영국 여성들이 '커피가 출산율을 떨어뜨린다'라는 팸플릿을 뿌리며 시위를 벌인 일, 프랑스령 기아나로 파견된 브라질의 미남 외교관이 작심하고 프랑스 영사 부인을 유혹해 반출 금지 품목이던 커피나무 두 그루를 빼돌린 게 브라질 커피 역사의 시작이었다는, 진위가 불분명한 설…. 강의를 마친 내게 사람들은 "오늘 강연 덕에 앞으로 커피를 더 맛있게 마실 것 같아요"라며 꾸밈없이 고마움을 전했다.

    이런 현상은 '커피집'이라는 책으로 강연을 할 때 더 확연하게 드러났다. 나는 책 속 두 장인의 오랜 경험과 기술, 커피에 대한 진심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청중이 매료된 대목은 두 장인이 어쩌다 그리 유명해졌는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이보 커피점에서 왜 항상 '3번 농도의 커피'만 마셨는지 같은 사연들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두 장인의 기술보다 그들의 커피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어울려 빚어낸 이야기였다. 그게 커피 향과 맛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촉매가 되는 셈이었다.

    커피는 기술로 발전하지만, 정작 커피를 사랑받게 해주는 건 이런 재미와 이야기들이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지금도 분주하게 현장을 지키는 커피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루하루 버거운 상황에서 재미와 보람이 뒷전으로 밀리는 현실이 마음 아팠다. 그럼에도 더 또렷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이거였다. 인공지능(AI)으로 인간성이 왜소해지는 시대, 사람이 하는 일의 진정한 매력은 '새로움'이 아니라 매일매일 부대끼며 쌓아 가는 '우리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것만이 삶의 재미와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은 아닐까.

    한국일보

    윤선해 ㈜후지로얄코리아·와이로커피 대표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