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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중·일 유사(有事)는 한국의 유사일 수 있다 [4강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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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편집자주

    요동치는 국제 상황에서 민감도가 높아진 한반도 주변 4개국의 외교, 안보 전략과 우리의 현명한 대응을 점검합니다.


    한국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위)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1월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2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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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대일 압박에 대한 순진한 시각
    대만해협 봉쇄는 한국도 영향받아
    국가안보 구조적 변화에 대비해야


    12월 7일 일본 방위성은 전날 오키나와 본섬 남동쪽 공해 상공에서 중국군 전투기가 항공자위대 F-15에 레이더를 조사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항모 랴오닝에서 발진한 J-15 전투기가 간헐적으로 조사를 가한 것으로, 사실상 무력적 경고 행위였다. 이 사건은 우발적 충돌로 볼 수 없다. 한 달 전인 11월 7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유사' 발언 이후 중국이 취한 여행 자제령, 유학 경고, 일본 영화 개봉 연기, 일본산 수산물 통관 강화 등의 조치가 양국관계의 긴장 고조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두고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남의 일처럼 관전하듯 바라보거나, 중국이 일본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국면을 한국에 유리한 환경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정치적으로 계산된 발언이라기보다, 대만해협과 바시해협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해상교통로의 취약성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나왔다. 이 지점에서 일본이 직면한 위협은 한국이 안고 있는 경제안보상의 리스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대만해협은 한국과 일본의 주요 물류와 에너지 수송이 집중되는 동아시아의 핵심 해상 교통로다. 양국 무역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이곳을 지나며, 봉쇄나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반도체, 자동차, 조선, 정유, 화학 등 우리 산업의 근간이 단기간에 충격을 받는다. 대만해협이 차단될 경우 우회해야 하는 바시해협도 동일한 성격을 지닌다. 이 해역은 중동산 에너지와 원자재가 동북아로 들어오는 주요 관문이자 중국 해군의 서태평양 진출로다. 미국, 일본, 필리핀이 이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느 한 지점에서라도 군사 충돌이 발생하면 동북아 전체 해상 운송망이 병목 상태에 빠지고, 한국과 일본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4일 발표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은 동북아의 전략 환경을 흔들 수 있는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NSS의 핵심은 명확하다. 미국은 더 이상 전 세계 모든 위기에 관여할 여력이 없으며, 동맹국이 스스로 더 많은 비용과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직접 개입을 줄이고 동맹국을 전방 억지의 핵심축으로 활용하려는 입장이다. 동북아에서 일본의 전략적 역할이 확대되고 한국에 대한 부담 분담 압박이 강화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동시에 중국의 영향권 확대를 억제하려는 미국의 장기적 흐름이 지속될 것임을 보여주는데, 일종의 연성 냉전 구도의 심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한국의 외교적 선택지를 급속히 좁히고 있다는 점이다. 중일 갈등은 위험 수위에 이르렀고, 미국은 동맹국의 역할 강화를 분명한 요구로 제시하고 있다. 대만해협과 바시해협의 긴장은 동북아 전체의 불안정을 높이며, 기존의 모호한 균형이나 관망 기조로는 더 이상 위기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명확한 원칙과 우선순위를 갖춘 외교 전략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일 갈등의 가속화는 한국의 경제 생명선과 국가안보를 압박하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다. 복잡해지는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과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일보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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