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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남성 역차별' 찾으려 열린 토크콘서트… 현실은 구조적 성차별 재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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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살롱] 성평등부 '2030 청년 토크콘서트'
    대통령 "남성 차별 사례 찾으라" 지시 거듭돼
    성형평성기획과, 총 5회 걸쳐 소통 자리 개최
    남성 육아휴직 고충, 간호학도 산부인과 배제
    모두 '역차별' 아닌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기인
    여성계 "보다 진전된 성평등 정책 구상할 때"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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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지난달 10일 충북 청주시 오창 과학산업단지에서 열린 제2차 성평등 토크콘서트 '소다팝'에 참여해 2030 청년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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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들이 구체적으로 차별받는 부분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정할 수 있을지 알아봐 달라."

    폐지 위기를 딛고 확대 개편된 성평등가족부 앞에 떨어진, 이재명 대통령의 사실상 첫 지시였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에 성평등부는 여성 차별뿐 아니라 '남성이 느끼는 차별'까지 조사할 임무를 띤 성형평성기획과를 신설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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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이 일차적으로 내놓은 대책은 성형평성기획과 주최로 20명 내외 2030 청년을 모아 게릴라형 토크콘서트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살면서 청년들이 직간접적으로 겪은 차별 사례를 공유하고 청취하는 자리로, 성차별 의제에 대한 청년들의 성별 간 인식 차이를 직접 알아보겠다는 취지였어요.

    여성 시민들은 "새 부처로 출범하자마자 남성 차별 사례를 들어주는 게 성평등부의 역할이 맞느냐"며 토크콘서트가 개최되는 것 자체에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지난달 15일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성평형성기획과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까지 진행됐죠.

    문제의 토크콘서트는 10월 29일 1차 행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4회 개최됐는데요. 지금까지 어떤 논의가 이뤄졌고, 얼마나 유의미한 수준의 '남성 역차별' 실태가 파악됐는지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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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성동구 KTG 상상플래닛에서 열린 제4차 성평등 토크콘서트 '소다팝'에서 청년 참가자들과 함께 '사회 참여기 청년의 성별 인식 차'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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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주기별 여성 차별 사례 쏟아져... '남성 역차별'은 실재할까


    "이곳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면 반도체, 제조업 같은 (남초) 분야가 많아요. 충북에 남고 싶어도 여성 구직자들은 수도권으로 이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 같아요. 취업 프로그램 선생님들도 '충북은 남자에게 유리한 직군이 많으니 차라리 다른 지역에서 경력을 쌓고 다시 오는 게 어떻겠냐' 조언하셔서 고민이 돼요." (충북 거주 20대 여성 구직자 김모씨)

    "제가 다니는 직장은 낮은 직급까진 남녀 비율이 비슷하지만, 점점 직급이 높아져 부장 이상급으로 가면 여성이 사라져요. 여성이자 직장인으로서 제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됩니다." (30대 여성 직장인 이모씨)

    4차에 걸친 토크콘서트 참여자 평균 성비는 남성 47.3%, 여성 52.7%로 비등했지만 행사에서 언급된 차별 경험은 여성의 사례가 월등히 많았어요. 여성들은 대부분 취업 전후 과정,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등 생애주기 전반에서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부당한 취급을 당하거나 활동에 제약을 겪은 적이 있다며 경험담을 전했습니다.

    물론 남성 발언자들 역시 차별이라고 느꼈던 사례를 공유했는데요. 특히 매 회차마다 남성 육아휴직을 마음 편히 쓸 수 없는 문화가 자주 꼽혔습니다. 한 30대 남성 참여자는 "유치원에서 아이에게 일이 생기면 1차 연락망이 다 엄마로만 돼 있다"며 "또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면 유별나게 보는 측면도 있다"고 했어요.

    이외에 20대 남성 간호학도 조모씨는 "소아과에선 남자보다 여성 간호사를 선호하고, 산부인과 실습 시 남성 간호 학생이나 간호사 참여가 일부 제한된다"고 토로했습니다. 30대 남성 김모씨는 병역 문제를 언급하며 "여성도 기초 군사 훈련 정도는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군대를 둘러싼 논란이 해소될 것"이라고 했고요.

    그런데 남성들이 겪은 이 사례들을 여성 인권 향상 때문에 발생한 '역차별'로 진단하는 건 적절할까요? 이선희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못 쓰는 것, 출산·아동 관련 의료 행위에 남성이 진입하기 어려운 것은 여성으로 인해 남성이 '역차별' 받는 문제가 아니라 성 역할 고정관념으로 인해 생기는 일"이라고 설명했어요. 국가가 '전투에 적합한 신체 능력을 갖춘 남성'만을 징병하고, 여성과 '능력이 미달된 남성'은 배제하는 병역 문제도 마찬가지죠. 원민경 장관도 줄곧 "'역차별'보다는 성별 간 인식 차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남성 역차별'이라 생각했던 일조차 결국 구조적 성차별에서 기인한 것이란 문제의식은 토크콘서트에서도 등장했어요. 30대 남성 석모씨는 "이곳 분들 모두 가정·직장에서 여성 차별이 있다는 건 다 아는 것 같다"며 "반면 아무리 생각해도 '남성 역차별' 사례로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죠. 또 다른 30대 남성 김모씨는 "20대 남성 위주로 차별에 대한 분노가 뚜렷하다면, 그 대상은 동년배 여성보다는 성차별에 무감했던 (윗세대) 형들을 향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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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성동구 KTG 상상플래닛에서 열린 제4차 성평등 토크콘서트 '소다팝'에서 청년 참가자들과 함께 '사회 참여기 청년의 성별 인식 차'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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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소통 노력은 유의미... 발전적인 성평등 논의로 나아가야"


    결론적으로 토크콘서트는 '남성 역차별'보다 뿌리 깊은 구조적 성차별을 새삼 재확인한 시간이었는데요. 여성계는 우선 성차별에 대한 인식 차를 좁히기 위해 논의의 초석을 마련한 점을 높게 샀습니다. 김미경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현장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소통하고자 부처가 노력한 것 자체로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일부 청년 계층에만 국한된 토크콘서트의 한계 또한 명확합니다. 김 교수는 "표집이 명확하지 않은 청년 소수에 한해 소통의 자리를 다소 성급하게 추진한 점은 아쉽다"며 "일부의 목소리가 또다시 정치적으로 활용되거나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어요.

    이어 "오늘날의 성평등 정책은 특정 계층 지원을 넘어, 젠더·계급·인종 등 여러 불평등 요소가 교차하는 지점을 고려해 논의를 확장할 시점에 와 있다"며 "향후 여성계와 폭넓은 논의를 통해 정책 구상을 생산적으로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토크 콘서트는 17일 열릴 5차를 끝으로 마무리되고, 그간 나온 논의들은 내년 새로 추진될 '청년 성별 균형 문화 확산' 사업에 참고 자료로 쓰인다고 하는데요. 성평등부가 성차별을 둘러싼 청년 세대 내의 오해와 논쟁을 단순히 재생산하는 게 아니라 건강한 논의를 통해 우리 사회에 깊이 누적된 구조적 성차별에 관한 인식 수준을 높일 수 있을지, 또 성별 간 인식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 주목해 봐야겠습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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