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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의원님들과 인맥이 밑천이다, 국회 찍고 대기업 골라가는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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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관예우 특수 누리는 보좌관



    “이래서 영입했나.”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태광그룹의 이호진 전 회장이 증인 명단에서 빠졌을 때 국회 주변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직전인 7월 국회 보좌관을 영입한 사실이 새삼 주목받았다.

    최근 논란이 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박대준 당시 쿠팡 대표의 만남도, 올 초 쿠팡 임원으로 취업한 김 원내대표의 보좌관 출신 인사 A씨를 다리로 꼽고 있다.

    중앙일보

    최근 여의도에선 기업들이 ‘보좌관 모셔가기’가 화두다. 중앙SUNDAY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국회사무처의 2020년 3월~2025년 11월 국회 퇴직공직자(4급 이상) 취업심사 결과 내역 438건을 분석 결과, 251명의 국회 보좌진이 이직했는데, 이 중 155명(61.8%)이 기업으로 간 것으로 확인됐다. 또, 기업행을 택한 보좌진 중 절반이 넘는 100명(39.8%)은 대기업으로 향했다. 매년 15~20명의 보좌관이 대기업에 취업한 셈이다. 대기업만으로 따져도 공공 부문(19.5%)이나 전문서비스 법인(8.4%), 협회·조합 등 이해관계단체(7.6%), 교육·의료·연구기관(2.8%) 등보다 많은 숫자다.

    보좌관들의 기업행이 늘어난 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국회의 힘이 세졌기 때문이다. ‘대관(對官)’이란 말에서 드러나듯 과거 대통령과 정부 권한이 세던 시기엔 기업 입장에선 ‘관’이 중요했다. 기업에 불리한 정책이나 규제의 도입, 인·허가 등 각종 민원, 사고 수습 및 대응 등 관이 방향을 잡으면 그대로 결정됐다. 더는 아니다. 그 권능의 상당 부분이 국회로 넘어갔다.

    여소야대 정부에선 말할 것도 없고, 여대야소 정부에서 국회의 발언권이 세다. 오죽하면 국정을 감사한다면서 민간(기업)에 대놓고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게 한국 국회다. 수시로 기업인들을 불러다 질타도 한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국회발 공세를 막기 위해 국회 출신을 기용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보좌관 전관예우’에 대한 기대다. 국회 관계자는 “과거 같으면 김앤장이나 태평양 등에서 대관을 주도했겠지만, 이제는 보좌관 특히 여권 보좌관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의원님들과 인맥이 밑천대관회사 차린 보좌관도



    실제로 기업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보좌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던 것으로 확인된다.

    중앙일보

    그래픽=남미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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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선 쿠팡은 지난 5년간 보좌관 15명을 영입했다. 올해 대관 조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18명의 국회 퇴직 공무원을 영입했는데, 이 중 8명이 국회 보좌관이었다. 고객 정보 15만여 건 유출 사건이 터졌던 지난달까지도 영입됐다. 지난해 6~8월 3명의 보좌진이 이동했을 때도 국회에서 쿠팡이츠의 배달원 산업재해 사고와 쿠팡 관련 발언이 548회로 급증했던 때였다. 5명의 보좌관이 이동한 카카오도 사정은 비슷하다. 2022년 2~5월 3명의 보좌관이 취업했는데, 카카오모빌리티의 시장 독과점 논란과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논의가 있었을 때다. 당시 국회에서 카카오 관련 발언 횟수는 739번으로 역시 역대 최고치였다. 2023년 11월, 국회 보좌관 3명(임원 1명, 책임 2명)을 영입한 태광그룹도 마찬가지. 횡령·배임으로 실형을 받았던 이호진 전 회장이 그해 8·15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는데, 이노공 당시 법무부 차관의 남편이 태광그룹의 임원인 것이 확인되면서 ‘이해충돌’ 논란이 일었다. 그해 10월엔 검찰이 이 전 회장의 수십억원대 횡령 및 비자금 조성 혐의로 태광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플랫폼 우호적 여론 조성 위한 영입도 활발

    기업이 보좌관을 영입하는 건 상임위에서 활동하며 쌓은 전문성보다는 ‘정치권과의 인맥’ 때문이라는 것이 정치권과 업계 관계자들의 일치된 설명이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대관 업무가 주로 국회 인맥을 통해서 기업 민원을 해결하고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서 빼고, 법안 로비를 하는 것 등이기 때문에 상임위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 보좌관 출신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국정감사 때 증인 신청이 들어올 만한 회사는 보좌관을 거의 필요로 한다고 봐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대응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고위직 법관들이 재판에서 ‘전관 예우’ 효과를 누리듯, 기업에 불리한 이슈를 국회에서 다룰 때 보좌관의 ‘전관 예우’를 바라는 셈이다.

    여기엔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업 환경이 급변하는 것도 한 요인이 됐다고 한다. 여권에서 추진했거나 추진을 예고하는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중대재해법 등은 기업으로선 크게 부담이 느는 방향이다. 이들 법·제도의 변화를 예측하고, 입법 리스크 관리, 정치권과의 커뮤니케이션 경험, 의원실 네트워크 등이 기업에 중요할 수밖에 없어졌다. 국회 보좌진들이 전공·이력과 부합하지 않는데도, 기업의 임원이나 고문 등 고위직으로 영입되는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보통 법조인이나 정치인들이 학맥이나 고시 등으로 엮이기도 하고 법적 대응 등에서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관 업무에서 선호됐지만, 최근에는 정치권의 흐름을 사전에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중요해졌다”며 “이 때문에 정치권 주요 인사, 특히 여권 실세들과의 네트워크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실세로 향하는 통로가 바로 보좌진인 셈이다.

    27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회에서 기업(공기업 제외)으로 가기 위해 취업 심사를 요청한 보좌관은 32명이다. 5년 전인 2020년은 19명에 불과했지만,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엔 26명이었다. 심사 요청 단계 이전에 기업에서 영입을 제안한 숫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여당의 을지로위원회로부터 ‘갑질 플랫폼’으로 지탄받았던 배달의민족도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 보좌관 출신을 대외협력실장으로 영입했다. 게임 규제 논의로 고심하는 넥슨도 민주당 보좌관 출신을 대관 임원으로 임명했다. 올해 쿠팡 이직으로 취업 심사를 받은 보좌관은 9명인데 모두 부사장·전무·상무 등 임원급으로 갔다.

    최근 성장세가 가파른 플랫폼과 가상자산 관련 업체로 보좌관들의 이직이 두드러진 것도 비슷한 이유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제 법안이나 제도의 틀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23년엔 이수진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 B씨가 케이뱅크 부장으로, 2025년엔 보좌관 C씨가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 대외협력본부장으로 갔다. 또, 두나무는 지난달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장경태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 D씨를 대외협력팀원으로 영입했고, 다른 의원실의 보좌관 E씨를 가상자산정책담당 실장으로 영입했다. 제약·바이오 분야도 보좌관들의 이동이 활발한 편이다. 최근 정진섭·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의 보좌관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부장으로 가거나 셀트리온, 대웅제약 등의 관리직으로 채용된 케이스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전·현직 보좌진들이 모여 ‘대관 전문’ 회사를 차리거나 준비 중이다. 대기업처럼 해당 인력에 고연봉을 부담할 만큼 여유가 없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들이 대상이라고 한다. 다만 ‘대관’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컨설팅’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검토 중인 전직 청와대 비서관 출신 인사는 “미국은 로비스트 제도를 인정하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법안이나 규제 관련 대관 업무가 성장해왔지만 한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다 보니 음성적으로 발달한 측면이 있다”며 “이제는 시대에 맞게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로비스트 불법, 음성적으로 발달”

    중앙일보

    그래픽=남미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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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런 보좌관들의 행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경실련은 “보좌관 업무가 정책이나 규제, 또는 기업 민원과의 접점이 매우 넓기 때문에 ‘로비 위험도’가 높지만 취업 제한은 너무나 좁게 적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것이 ‘업무 기준 제한’의 적용이다. 국회 보좌관들은 취업 심사에서 기관(국회)이 아니라 부서(상임위)를 기준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실제의 직무 관련성은 매우 넓지만, 대부분의 보좌관 직급이 3급 이하이기 때문에 기관 기준에서는 제외되고 덕분에 ‘허들’이 느슨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최근 5년간 보좌관의 취업제한 여부 심사결과 중 ‘취업 가능’은 98.3%에 달한다. 또, 251건의 취업 심사 중에서 기관(국회)과의 연관성을 심사한 것은 9건에 불과했다.

    서휘원 경실련 정치입법팀 팀장은 “보좌관이 대기업으로 많이 가는 것은 ‘전문성’보다는 ‘전략적 영입’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보좌관이 의원실에서 특정 기업 관련 이슈를 다뤘더라도 보좌관이 의원실에서 담당하는 업무는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문제 삼아 제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거대한 사각지대가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신수민·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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