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히틀러는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고 단번에 빠져들었다. 불과 12살, 바그너 숭배의 시작이었다. 훗날 바그너를 프리드리히 대제에 견주며 ‘독일 국민을 이끈 위대한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나치에게도 바그너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었다. 중요 행사 때마다 웅장한 바그너 선율을 틀어 선동 도구로 활용했다. 히틀러는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바그너 음악의 최고봉으로 꼽았는데, 정작 이 걸작이 바그너가 후원자의 아내 마틸데 베젠동크와 나눈 ‘금지된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2001년 7월 예루살렘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의 전주곡이 울려 퍼졌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있는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연주는 금기다. 객석에선 “치욕스럽다”는 항의와 기립박수가 엇갈리며 소동이 빚어졌다. 당시 앙코르로 이 곡을 연주한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유대인이면서도 바그너를 금지하는 풍토에 맞서왔다. ‘작곡가 바그너’와 ‘반유대주의자 바그너’를 분리해야 하며, 바그너 음악이 홀로코스트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최근 국립오페라단이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막을 국내 초연했다. 지난해 ‘탄호이저’ 원어 초연에 이어 내년엔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가운데 ‘라인의 황금’을 올린다니, 그야말로 ‘바그너 전성시대’다. 나치 트라우마가 없는 우리 사회에서 바그너에 대한 거부감은 적은 편이다. 오히려 2000년대 이후엔 바그너 음악의 마력이 부각되면서 ‘바그네리안’(바그너 숭배자) 열풍까지 불었다.
하지만 시선을 내부로 돌리면, 우리 또한 이스라엘 못지않은 딜레마와 마주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안익태, 홍난파 등 적극적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음악가들에 대한 평가 문제다. 바그너를 연주하는 것이 히틀러에 대한 패배가 아니듯, 친일 음악가의 곡을 부르는 것이 곧 식민 지배에 대한 굴종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적 성취를 인정하는 것과 역사적 과오를 묵인하는 것 사이의 줄타기는 바렌보임의 항변보다 훨씬 위태롭다.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은 거부하면 그만이지만, 친일 음악가들이 남긴 ‘애국가’나 ‘고향의 봄’은 한국인의 정서적 유전자에 깊이 박혀 도려내기 어렵다. 예술을 도덕의 잣대만으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불편한 진실을 마냥 덮어둘 수도 없다. 예술과 역사를 동시에 응시하는 성숙한 시선을 지닐 때, 예술을 예술로서 온전히 껴안을 수 있을 것이다.
임석규 문화부 기자 sky@hani.co.kr
윤석열? 김건희? 내란사태 최악의 빌런은 누구 ▶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