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 가르는 ‘도시의 온도’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비나 눈이 내린 11일 오전 서울 남산에 비구름이 걸려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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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경기 과천에서 서울 양재로 넘어가는 과천터널. 터널 진입 전까진 눈발이 강하게 흩날리더니, 터널 통과 후에는 부슬비가 내렸다. 같은 구름대인데 과천은 눈이, 서울은 비가 내렸다. 눈과 비를 가른 원인으로는 ‘도시의 온도’가 꼽힌다. 서울이 과천보다 뜨거워서 강수 패턴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도시 열섬’이 겨울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 도시 열섬은 도시가 외곽 지역보다 기온이 높아지는 현상이다. 녹지가 부족한 도시에선 아스팔트 도로가 낮 동안 내리쬔 햇볕에 달궈지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온실효과와 공장·자동차·에어컨 실외기가 뿜어내는 ‘인공열’ 등이 도시 전체의 기온을 끌어올리게 된다. 열섬 현상은 여름철에 폭염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겨울철에도 적설량 감소와 초미세먼지 확산 등을 견인해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13일은 ‘수도권 폭설’이 예보된 날이었다. 오후부터 북쪽 찬 공기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서해상을 통과하며 큰 강수 구름대가 만들어졌고, 천천히 수도권 상공을 통과했다. 실제로 이날 경기 양평(4.1㎝)·광주(4.1㎝)·연천(3.6㎝) 등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과천에 있는 관악산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는 적설량이 8.8㎝로 기록됐다. 대설주의보 발효 기준(적설량 5㎝ 이상)보다 많은 눈이 내렸다.
그래픽=이진영 |
하지만 서울 시민들은 이날 눈 구경을 거의 하지 못했다. 눈 대신 비가 주로 내렸기 때문이다. 용산·서초구는 눈이 하나도 내리지 않았고, 눈이 소량 내린 서대문구(0.6㎝)·종로구(1㎝)·은평구(1.1㎝) 등도 늦은 오후 기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비가 눈으로 일부 바뀐 것이었다. 구름대가 서울을 피해 수도권 다른 지역만 통과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서해상을 지나 수도권 전역을 훑고 동진한 구름대는 서울보다 동쪽에 있는 양평 등에 5㎝ 가까운 눈을 뿌렸다. 결국 같은 구름대가 통과했는데도 눈과 비를 가른 ‘다른 변수’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 변수를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습구온도’다. 습구온도란 기온과 열기, 습도 등을 반영한 온도다. 구름대가 특정 지역을 통과할 때, 그 지역의 습구온도가 1도 이상이면 비, 1도 미만이면 눈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본격적으로 강설이 시작된 13일 오후 4시 기준으로 서울(은평)은 습구온도가 2도였던 반면, 과천(관악산)은 영하 1.3도, 양평은 0.6도로 서울보다 낮았다. 서울이 다른 지역보다 도시 자체가 더웠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기온이 영하 5도 아래로 크게 떨어진 상황이었다면 서울에도 많은 눈이 내렸겠지만, 이날은 기온이 0도를 오르내렸기 때문에 서울의 ‘열섬’이 적설량을 줄인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열섬 효과가 생기면 눈이 비로 바뀌거나, 눈이 내리더라도 지표에 쌓이지 않고 녹아버리게 된다. 눈이 쌓여 있으면 천천히 녹으면서 봄까지 땅이 축축하게 유지되는데, 비로 바뀌어 내리면 금세 말라버려 봄으로 갈수록 건조도가 심해진다. 기상청은 올겨울(12월~내년 2월)이 예년보다 전반적으로 따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눈으로 내려야 할 강수가 비로 바뀌거나 쌓인 눈 대신 물웅덩이가 생기는 현상이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열섬은 공기도 탁하게 만든다. 16일 오후 우리나라로 들어온 중국발(發) 미세먼지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수도권과 충청권을 중심으로 초미세먼지(PM2.5) 수치가 ‘나쁨’을 기록했다. 열섬에 의해 지표가 뜨거워지면 상승 기류가 생기고, 좌우로 움직이는 공기 흐름을 방해해 미세먼지가 갇히는 효과가 생긴다. 국립환경과학원은 17일에는 전국에서 초미세먼지 수치가 ‘나쁨’일 것으로 예상했다. 주말까지는 수도권 일대를 중심으로 초미세먼지 농도가 짙을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열섬
도시가 외곽 지역보다 온도가 높아지는 현상. 낮 동안 햇볕을 흡수해 열을 품고 있는 아스팔트 도로와 대기오염으로 인한 온실효과, 자동차·에어컨 실외기가 뿜어내는 인공열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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