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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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을 놓고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이어지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 최상위 지침인 NSS는 트럼프가 향후 3년간 구사할 모든 정책, 자원 배분의 준거점이 된다. 지난 5일 자정 가까운 시각에 기습 공개된 NSS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적인 구성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은 “NSS는 종종 내용이 빈약해 금세 잊히지만 이번만은 예외”라며 “80년 전 냉전이 시작된 이래 미국 외교의 가장 큰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새 시대가 열렸다”고 했다.
NSS 집필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주도로 이뤄지지만, 국무부 정책기획국(S/P) 입김도 세다. 하스를 비롯해 ‘롱 텔레그램’이라 불리는 전문(電文)으로 미국의 대(對)소련 봉쇄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조지 케넌, 냉전 시대 군축 정책의 입안자인 폴 니체,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 브레인이던 제이크 설리번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 거쳐간 자리다. 트럼프 정부 NSC가 사실상 기능 부전 상태라 정책기획국이 총대를 멨다고 하는데, 지난 9월까지 국장으로 있으면서 집필을 담당한 마이클 안톤은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스피치라이터 출신이다. 조지 소로스를 등에 업은 민주당원들이 “미국 장악을 위한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 등 논란을 몰고다니는 쪽에 가깝다.
NSS는 약 30쪽에 걸쳐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시각에서 미국이 왜 앞마당인 서반구 방어에 집중하려 하고, 왜 더 이상 아틀라스처럼 세계 질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할 수 없는지를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파격이 불러온 논란과는 별개로 NSS 발표 이후 미 조야(朝野)에서 정치인과 관료, 학자, 언론인 등이 나서서 나라의 경로를 놓고 끝없는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엘브리지 콜비 국방 차관이 작성을 주도한, 군사 정책과 국방 운영의 나침반인 국방전략(NDS)이 공개된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석에서 만난 콜비는 미국에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말과 글로 논리 정연하게 풀어내는 전략가였다.
우리 외교·국방 당국에도 이런 전략가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일정 높이 이상 되는 자리에만 가면 실무자와 진배없이 당면한 현안을 쳐내기에 급급했다. 나라의 리더십은 큰 줄기를 고민하기보다 5년 단임 정권의 레거시가 될 만한 아이템과 그 작명(作名), 국제 행사 등을 솎아내는 데 집중했다. 동맹의 부담 분담을 강조하면서도 역량 확보를 위한 공간을 열어준 NSS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같은 숙원 사업을 이루려는 한국으로선 기회다. “철통같은 한미동맹” 구호를 외치는 수준을 넘어 진짜 자강(自强)을 고민해야 하는 이 시기에 우리 정부에서도 10년, 100년 단위로 고민하는 선굵은 전략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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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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