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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9 (금)

    “우리는 이미 탈세계화란 메가 트렌드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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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KLY BIZ] [Cover Story] 드 부셔 베인앤드컴퍼니 CEO “美 중산층 소비 심리 꺾여 내년 리스크될 수도”

    조선일보

    최근 서울 중구 베인앤드컴퍼니 사무실에서 크리스토프 드 부셔 최고경영자(CEO)가 WEEKLY BIZ와 만나 내년 세계 경제 전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드 부셔 CEO는 “미국 고소득층의 소비 심리와 인공지능(AI) 투자 성과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데이터는 나쁘지 않지만 불확실성이 큰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생존 전략을 짜야 할 때”라고 했다./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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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가 개방되고, 자유무역이 확대되던 시기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포스트 세계화(post-globalization)’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글로벌 무역 질서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최고경영자(CEO)들도 적잖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세계화의 종언. 전략 컨설팅 업계의 ‘정통파’로 불리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를 이끄는 수장의 인식은 분명했다. 세계 경제를 뒤흔든 지정학적 파고가 잦아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국을 상대로 벌였던 관세 전쟁의 포성이 멎으면 세계 질서가 원래대로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허상에 가깝다는 뜻이다. 크리스토프 드 부셔 베인앤드컴퍼니 CEO는 되레 ①포스트 세계화 현상을 ②노동 자동화 ③에너지 이슈 ④자본의 재분배와 함께 향후 수십 년 동안의 세상에 대전환을 이끌 4대 메가 트렌드로 꼽았다.

    베인앤드컴퍼니는 맥킨지·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함께 세계 3대 전략 컨설팅 회사로 꼽히는 곳으로, 특히 글로벌 기업 CEO들이 경영 자문을 구하는 전문가 집단 중 최고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WEEKLY BIZ는 최근 고객사 방문차 방한한 드 부셔 CEO를 서울 중구 베인앤드컴퍼니 한국 지사에서 만나 세계 경제의 현주소와 내년 전망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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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화의 시대, 끝났다”

    -왜 세계화가 끝났다고 보나.

    “1990년대는 세계가 본격적인 개방으로 나아간 출발점이었다. 이 무렵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고,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수억 명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계 경제가 세계화와 자유무역 확대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국제 교역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교역의 방식과 규모는 달라질 것이다. 개방성이 줄어들고, 글로벌 공급망이 이전보다 더 불안정해질 것이다.”

    -트럼프식 고율 관세 같은 리스크가 사라지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 않나.

    “트럼프가 일으킨 관세 전쟁은 세계화 종식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나타난)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후퇴는 트럼프 이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사실 세계화가 많은 이에게 혜택을 줬지만, 그 혜택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다. 부유층은 시장 확대로 더 많은 부를 쌓았고, 빈곤층의 상당수는 가난에서 벗어났다. 반면 미국과 유럽의 중산층은 상대적으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맞았다. (근로 소득에 의존하는) 중산층은 자산 증식 효과가 크지 않았고, (러스트벨트 사례처럼 생산 기반 이전 등으로) 일자리를 뺏기기도 했다. 이런 불만이 쌓이자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 구호를 내건 정치인들이 대거 당선됐다. 트럼프가 당선되고, 관세 전쟁을 일으킨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화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포스트 세계화’로 들어선 것이다.”

    -포스트 세계화 외에 주목해야 할 흐름은.

    “포스트 세계화와 함께 노동 자동화, 에너지 이슈, 자본의 재분배 등 네 가지 거대한 물결이 동시에 일고 있다. 우선 노동 자동화는 인공지능(AI)·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손수 해야 했던 일이 기계로 대체되는 것을 말한다. 에너지 이슈는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어떻게 충족할 것인가, 생산비는 어떻게 낮출 것인가, 친환경 생산은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다. 자본의 재분배는 첨단 기술 등에 막대한 투자가 몰리면서 저축보다 지출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을 일컫는다. 우리는 올해 이 네 가지 트렌드의 진행을 확인했고, 2025년이 이른바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의 기점이자 기폭제였던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10~20년 뒤에는 이 흐름들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세상을 바꿔 놓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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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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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지펀드처럼 판을 짜라

    -이런 거대한 파고가 기업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포스트 세계화 시대엔 관세 등 무역 장벽이 높아지고,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 입장에선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는 만큼 한 지역에 초대형 공장을 두기보다 각지에 ‘마이크로 팩토리(micro factory)’를 분산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에너지는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도 비용을 낮추는 전략을 짜고, 자본 재분배 흐름 속에서 (금리 인상 등) 자본 조달 비용이 오를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노동 자동화는 소프트웨어 기업, 광고 회사 등 화이트칼라 직종뿐 아니라 산업 현장에 있는 블루칼라 직종을 불문하고 나타난다는 점에서, 모든 기업이 노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어떻게 대응하란 뜻인가.

    “나는 모든 CEO에게 ‘헤지펀드처럼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헤지펀드는 투자할 때 상승에 베팅하는 ‘롱(long)’과 하락에 대비하는 ‘숏(short)’ 포지션을 적절히 나눠 가져간다. 메가 트렌드의 수혜를 받을 사업이나 자산에 롱을 베팅하고, 피해가 예상되는 곳에 숏을 걸라는 얘기다. 이게 가능하려면 현재 회사의 사업 방향, 재무 상태, 리스크 요인 등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당장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시장 예측이 틀릴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획을 빠르게 수정하는 전략적 유연성이 필수다.”

    -‘헤지펀드 사고법’을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가령 인도에 A라는 IT(정보기술)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회사 매출의 80%가 미국 시장에 집중돼 있다면, 현재 환경에서는 상당한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봐야 한다. 이 경우 판매 시장을 다변화하는 등 ‘숏’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우수한 인재를 다수 확보하고 있어 최근 주목받는 AI 비서를 개발할 역량이 있다면, AI 모델을 앞세워 자국 시장은 물론 중동이나 동남아 등으로 적극 진출하는 ‘롱’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해외 수요와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생산 기반이 에너지를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는 지역에 있는지 등을 점검해 기업의 포지션을 재정비하자는 취지다.”

    ◇안갯속 내년 전망

    -내년 글로벌 경제는 어떻게 보나.

    “내년 세계 경제를 전망할 때 우리는 몇 가지 핵심 데이터를 눈여겨본다. 대표적으로 미국 고소득층의 소비 심리와 AI 투자 성과가 있다. 현재 미국 경제는 ‘고소득층의 지출’과 ‘AI 투자’가 견인하고 있다. 주식시장, 자산 시장의 호황도 결국 이 두 축이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고소득층의 자산 가격이 꺾여 이들이 지출을 줄이면 미국 경제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 AI 투자 속도가 둔화되거나 생산성 향상과 같은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세계 경제 전체에 파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 외에도 관세 정책과 무역 관련 지표도 중요한 모니터링 대상이다.”

    -그렇다면 현재 데이터를 기준으로 볼 때 2026년도 경제는 어떤가.

    “아시다시피 최근 미국 주식시장의 흐름은 양호하다. (주식시장 투자 비중이 높은) 미국 고소득층의 소비 심리도 덩달아 견조한 편이다. AI 투자는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고, AI 기업들의 분기 실적이나 기술 발전 성과 등도 긍정적이다. 문제는 중산층 이하의 소비 심리가 상당히 꺾였다는 점이다. 여기에 지정학적 갈등이 계속되는 등 잠재적인 리스크가 적지 않다. 내년 경제의 예측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CEO들은 언제 다가올지 모를 충격에 대비해 적응력과 회복 탄력성을 키워야 한다. 현시점에서 데이터는 나쁘지 않지만,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생존 전략을 짜야 할 때라고 본다.”

    -내년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를 꼽자면.

    “앞서 말한 메가 트렌드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다. 포스트 세계화로 국제 무역은 위축되고, 에너지 이슈와 자본의 재분배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노동 자동화에 속도가 붙으면서 AI나 로봇에 막대한 자본이 몰려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내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포스트 세계화로 인한 문제와 인플레이션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AI, 150년 만의 최대 기술 혁신”

    -‘AI 버블론’에 대한 생각은.

    “주가는 원래 오르락내리락한다. 버블 역시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다. 우리는 결국 펀더멘털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AI는 지난 150년 동안 모든 기술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범용 기술이라고 본다. 증기기관, 대량 생산, 전산화 수준의 기술 혁신이다. AI가 주도하는 기술 대전환은 이미 시작됐고, 기업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야 한다. 주가의 변동성, 버블 논쟁 등 주변의 소음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각국과 기업들은 AI 기술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답은 간단하다. AI를 모든 산업과 서비스 분야에 걸쳐 폭넓게 도입하고, 이를 실행할 인재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세상이 바뀌는 변화의 정점에 서 있다. AI를 얼마나 빠르게 확산시켜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느냐가 향후 수십 년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기계공학자들은 증기기관 기술을 섬유산업을 넘어 모든 산업에 도입했고, (공장 조립 라인 도입 등으로) 대량 생산 시대를 연 미국도 마찬가지다. AI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연구·개발(R&D)과 인재 확보를 통해 산업 전반을 혁신해야 한다.”

    -베인앤드컴퍼니는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우리는 커스텀(사용자 맞춤형) GPT와 AI 에이전트를 가장 빠르게 구축한 회사 중 하나다. 현재 2만3000개의 커스텀 AI 모델이 있고, 컨설턴트가 직접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픈AI와 협력해 베인앤드컴퍼니의 전 세계 직원이 참여하는 ‘GPT 올림픽’도 개최했는데, 이곳 베인 한국 지사에서 우승자가 나왔다. 컨설턴트의 역할은 ‘만약 이렇다면(what if)’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AI를 통해 서비스를 혁신하고, 생산성을 개선하려면 실제로 무엇이 가능한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한국은 기술 혁신의 심장

    -한국 시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에너지·배터리 등 AI 밸류체인(가치 사슬)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또 미국과의 안보 협력 차원에서 조선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K팝의 여파로 K뷰티와 K푸드 등 한국 소비재의 문화적 파급력도 커지고 있다. 어느 기업이든 글로벌 트렌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해진 셈이다.”

    -중국 기술 기업의 약진으로 한국이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도 큰데.

    “중국의 첨단 기술 추격이 위협적인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정부가 목표 산업을 정하고 기업 수십 곳을 치열하게 경쟁시켜 챔피언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파산하는 등 도태된 기업들은 정부의 관심 밖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챔피언은 엄청난 자본을 지원받고, 기술 인재를 공급받으며 성장한다. 하지만 일부 국가는 각종 이유로 중국 기업과 기술 채택을 꺼리고 있다. 한국은 이들에게 최고의 선택지가 되면 된다. 포스트 세계화로 한국이 반사이익을 누릴 여지도 있다는 얘기다.”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고 보나.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공통점은 사람들이 자국의 문제점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많은 나라가 부러워할 강점이 많다. 내가 이번에 한국을 온 이유도 한국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적극적인 R&D 투자, 뛰어난 인재, AI 밸류체인의 유리한 위치 등 강점이 매우 많다. 한국 기업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가 미래를 개척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강점에서 출발하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은 글로벌 ‘AI 붐’의 중심에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율은 세계 최상위권이고, 로봇 보급률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다. 우리가 메가 트렌드로 꼽은 노동 자동화에 우위가 있다는 얘기다.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기술을 다루는 기업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어떻게 노동 자동화의 강점을 활용해 생산 과정을 혁신하고, 비용을 절감할지 고민하면 된다.”

    -베인앤드컴퍼니의 향후 비전은.

    “베인앤드컴퍼니는 ‘고객사가 업계 최고 수준의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 산업 분야에서 탁월함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도록 돕는다’를 사훈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기업들이 AI를 혁신적으로 활용해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지원할 것이다. 베인앤드컴퍼니가 가진 전략·기술·협업 역량이 고객을 위한 최고의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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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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