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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9 (금)

    [논설실의 뉴스 읽기] 요즘 기후부 “인류 멸망할 수 있는데 다른 정책이 무슨 소용?”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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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소 배출 44%인 미·중은 외면… 1.5%인 우리만 급가속 페달 밟아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은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 참석해서도 “지구가 빠른 속도로 더워지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고 이 문제를 막지 못하면 실제로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30년대 중반 지구 온도가 2도를 넘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다른데 투자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기후 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며 “2025년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사실상 1.5도를 넘었고, 이대로라면 2030년대 초반 2도 이상 증가하는데 전문가들은 2도를 넘으면 세계 경제가 붕괴하고 3도를 넘으면 인류 문명 체계가 붕괴한다고 경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후부가 화석연료를 종식하고 재생에너지 중심 탈탄소 녹색 문명으로 대전환하도록 초석을 놓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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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장관, 기후 문제에만 집중

    친(親)환경 단체 성향인 김 장관은 지난 7월 환경부 장관에 취임했고 환경부는 10월 1일부터 산업자원부의 에너지 기능을 가져와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변신했다. 기후부가 출범한 지 석 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김 장관은 우리나라와 기업에 메가톤급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여러 개 발표했다.

    먼저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적어도 53%, 최대 61% 감축하겠다는 ‘2035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발표했다. 이는 한국이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정점이던 2018년 대비 몇 %를 줄일지 정한 계획이다. 산업계는 현실적으로 48%도 벅차다고 했는데 이를 훌쩍 뛰어넘은 목표였다.

    김 장관은 또 지난달 브라질 기후당사국 총회에서 탈석탄동맹에 가입했다. 탈석탄동맹 가입은 2040년까지 석탄 발전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한국은 전력의 약 30%를 석탄으로 만든다. 아시아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인데, 아시아에만 우리보다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는 나라가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국이나 있지만 모두 이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다. ‘2040 석탄발전 폐지’는 대선 공약이라고 하지만 공감대 없이 추진한 일이라 대부분 국민은 느닷없다고 느끼고 있다. 김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수명이 남은 석탄발전소는 LNG 발전으로 전환하거나 금전 보상으로 조기 폐쇄하는 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실세 장관이 와서인지 내년도 기후부 예산은 올해보다 10% 가까이 증가한 19조2000억원으로 늘었다. 내년도 기후부 예산 보도 자료를 보면 탈탄소, 재생에너지라는 단어 일색이다. 재생에너지 금융 지원을 올해 3000억원대에서 내년 6000억원대로 2배로 늘리는 식이다. 기후부 예산을 소개하는 4개 항목 중 첫째와 둘째가 탈탄소와 재생에너지이고 셋째는 물 관리다. 국립공원 관리 등 기존 환경 영역은 마지막 항목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환경부가 에너지 분야를 흡수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환경 분야까지 먹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 장관도 자신을 ‘에너지 장관’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한 기후부 관계자는 “요즘 장관 언행을 요약하면 ‘지구가 망하게 생겼는데 다른 (환경) 정책이 무슨 소용이냐’는 분위기”라며 “환경 분야가 기후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닌데 다른 분야는 별 관심을 받지 못해 찬밥 신세인 셈”이라고 말했다.

    ◇태양광, 매일 이대 교정 채워야 가능

    온실가스 감축은 전 지구적 과제다. 우리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적극 동참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배출량이 1.5%에 불과한 만큼 주요국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2024년 이산화탄소 배출 1위는 중국으로 전 세계 배출량의 31%를, 2위는 미국으로 13%를 배출하고 있다(Our World In Data). 두 나라가 전 세계 배출량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 변화는 사기”라며 아예 파리협정에서 탈퇴해 버렸다. 중국은 2035년까지 정점 대비 7~10% 감축하겠다는 맥 빠지는 목표를 내놓았다. 기술 발전으로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것 외에는 사실상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식이다.

    트럼프가 아무리 ‘사기’라고 해도 기후 변화를 막으려는 시도 자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데 전문가들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미국도 주정부 차원에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흐름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 당사국 총회에서 드러났듯,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도 국익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을 늦추겠다, 돈은 못 내겠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만 기업에 큰 부담을 주며 과속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유럽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난을 겪으면서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는 등 탈탄소 동력을 많이 잃었는데 우리만 역주행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무리한 탈탄소 로드맵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용량을 지난해 34GW에서 2030년 100GW 돌파를 목표로 설정했다. 손양훈 교수는 “남은 5년 동안 매일 이화여대 캠퍼스(약 36만㎡)에 태양광을 깔아야 가능한 규모”라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2035년까지 전기·수소차 판매 비율을 7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목표도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했고, 유럽은 2035년 내연차 전면 금지 입장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김 장관은 이미 확정된 신규 원전 2기를 백지화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2월 확정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확정된 신규 원전 2기에 대해 “여론조사와 토론회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김 장관은 극렬한 반(反)원전주의자였다. 집권 직전에도 신규 원전을 짓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고 명확히 반대했다. 그러면서 값비싼 LNG 발전이나 생산이 불안정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충만 얘기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산업계 충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탈탄소 로드맵은 국가 경쟁력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를 넘으면 지구가 망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탈탄소 과속을 하면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우리는 기후 악당 아니라 양심적인 탄소 배출국”

    환경단체들은 요즘에도 한국이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며 강력한 탈탄소 정책 추진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기후정책은 후진적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맞는 탄소 배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세계 전체의 1.5% 탄소 배출을 하고 있는데, 글로벌 경제 비중도 딱 1.5%”이라며 “기후 악당이 아니라 경제 규모에 맞게 양심적으로 배출하는 국가”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글로벌 GDP의 15%를 차지하지만 배출량은 31%로 2배 넘게 배출하고 있다. 인도는 GDP는 3%, 배출량은 8%를 차지하고 있어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더 노력을 해야하는 나라다.

    정확하게 지구온난화의 배출 책임을 따지려면 누적 배출량으로 따져야 하는데, 유럽과 미국은 오랜 세월 동안 탄소를 제한없이 배출하며 성장해온 나라들이다. 2023년 기준 누적 배출량을 보면 중국이 17%로 가장 높고 미국이 15%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 러시아가 5%대, 브라질이 4%대, 일본이 3%대, 독일·영국이 2~3%를 배출했다. 우리나라는 1%로 19위다.

    우리나라가 기후 악당 소리를 들은 것은 10년 전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것이 원인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1인당 배출량이 높은 이유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제조업 수출에 기반한 경제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당 배출량도 11.2톤으로 줄어 세계 18위(Our World In Data)로 떨어졌다. 산유국과 소국을 제외하더라도 캐나다, 호주, 러시아, 미국, 핀란드 등이 우리나라보다 1인당 배출량이 많다.

    탄소 중립을 주도하는 유럽은 금융과 서비스업 중심이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수월하지만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이라 불리한 조건이다. 더구나 유럽 소비자들은 친환경을 부르짖지만 소비는 여전히 높고 소비에 묻어 있는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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