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동남아 새 성장 엔진

지난 1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AI 포 굿 베트남(AI for Good Vietnam)' 행사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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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AI 포 굿 베트남(AI for Good Vietnam)’ 행사장. 한쪽에서는 중·고등학생 대여섯 명이 작은 실험용 트랙 앞에 모여 마지막 점검에 몰두하고 있었다. 행여 오류가 나지 않을까, 소형 로봇을 연신 들어올리며 바퀴와 바닥 센서를 다시 확인했다. 무대에 오르자 리모컨을 쥔 손 놀림도 분주해졌다. 시연이 이어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베트남 과학기술부 산하 국가혁신창업지원센터(NSSC) 후원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학생들이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등의 기술을 활용해 비판적 사고력과 협업 역량을 기르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프로그램을 주관한 응우옌 푸엉 린 베트남 지속가능발전경영연구소 이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기술을 활용해 삶에 도움이 되는 해결책을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베트남 AI 교육이 청소년 단계부터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지난 1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AI 포 굿 베트남(AI for Good Vietnam)' 행사에서 학생들이 자신이 만든 로봇으로 경주를 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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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전략으로 키운 AI

젊은 인구와 낮은 인건비를 앞세워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동남아시아는 최근 AI를 새로운 성장 축으로 삼고 있다. 주요국은 정부 주도 디지털 전략과 민간 투자를 병행하며 AI 산업 기반을 빠르게 넓혀가는 분위기다. 싱가포르는 동남아를 넘어 글로벌 AI 선도국으로 평가받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발표한 ‘인공지능 준비도 지표’에서 174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성과를 거두기까지 부단히 페달을 밟아왔다. 2014년 ‘스마트 국가 이니셔티브’를 시작으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핀테크 등 신기술 등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했고, 2019년에는 ‘국가 AI 전략 1.0’을 수립했다. 2023년 말에는 ‘공익을 위한 AI’를 내건 ‘국가 AI 전략 2.0’을 발표하며 2028년까지 10억 싱가포르 달러(약 1조 원) 이상을 투자하고, 2030년까지 AI 전문가를 1만5,0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국가 AI 전략 2.0' 홍보포스터. 싱가포르 경제개발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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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중진국들도 속도를 내고 있다. 베트남은 2021년 국가 전략에서 AI를 핵심 경쟁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2030년까지 아세안 4대 AI 강국, 세계 50위권 진입이 목표다. 교육훈련부는 올해 말부터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AI 교육을 시범 도입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태국은 ‘디지털 경제의 지역 허브’를 내세워 AI 기술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AI 인재 양성에 최소 60억 밧(약 2,800억 원)을 투입하고, 기업들이 5,000억 밧(약 23조4,000억 원) 규모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조만간 의료, 행정, 스마트 도시 개발 등을 포함한 국가 AI 로드맵과 AI 윤리 규정을 담은 대통령령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현지 안타라통신은 전했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국가혁신센터 NIC에서 국영 ICT기업 비엣텔이 만든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이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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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투자 러시

글로벌 기술 기업의 시선도 동남아로 향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베트남을 ‘제2의 거점’으로 낙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베트남을 방문해 현지 정부와 AI 데이터 센터, 연구개발(R&D) 협력에 합의하며, “AI가 베트남 성장 동력을 크게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는 호찌민국립대에 100만 달러(약 14억7,000만 원) 규모 ‘AI 장학금’을 제공하며 인재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10월 태국에 10억 달러(약 1조4,700억 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교육과 인력 양성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말레이시아에는 데이터센터 투자가 집중되는 모습이다. 구글(20억 달러), 아마존웹서비스(AWS·60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MS·22억 달러)는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2028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데이터센터 총 용량의 5분의 1(5기가와트·GW)이 말레이시아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젠슨 황(왼쪽 두 번째)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팜민찐(왼쪽 세 번째) 베트남 총리와 인공지능 연구개발 센터 설립 협력 협정을 체결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베트남 국가혁신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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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투자 확대는 경제 성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컨설팅업체 AT커니는 2030년 AI 산업이 동남아에서 9,500억 달러(약 1,404조 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동남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3%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동남아가 빅테크의 AI 허브로 급부상한 배경으로 인구 구조를 지목한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인 한동만 연세대 초빙교수는 “약 6억7,000만 명의 인구를 기반으로 한 방대한 데이터 생성 환경이 조성돼 있고 모바일·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익숙한 청년층이 많아 디지털 혁신 수용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른 지역보다 토지·전기·용수 비용이 저렴한 점도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IT기업의 주목을 받는 요인으로 꼽았다.

김영섭(왼쪽) KT 대표가 지난 5월 베트남 하노이 비엣텔그룹 본사에서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따오득탕 비엣텔 그룹 회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K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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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도 주목

한국 기업들도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 미국·유럽 시장에 비해 성장 여지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KT는 지난 8월 베트남 최대 통신사 비엣텔 텔레콤을 보유한 국영 ICT기업 비엣텔 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인프라 구축은 물론 베트남 특화 AI 모델 개발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언어 모델 개발, AI 데이터 센터 구축까지 협력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하노이에 설립한 글로벌 개발센터(GDC)를 통해 현지 실무형 인재를 양성·활용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LG CNS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재계 서열 3위 시나르마스 그룹과의 합작법인 ‘LG 시나르마스 테크놀로지 솔루션’을 출범시켰다. 데이터센터 컨설팅과 구축·운영, 클라우드 전환 사업을 추진 중이다. 향후 스마트시티와 금융 IT 서비스로 영역을 넓혀 종합 디지털 전환(DX) 사업자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다.

지난 1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AI 포 굿 베트남(AI for Good Vietnam)' 행사에서 한 시민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가상현실(VR) 체험을 하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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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