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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1 (일)

    ‘우리 집 밑 고속철도’ 논란 재점화…불안한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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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키뉴스

    서울 영등포구 신길뉴타운 수색~광명 고속철도 건설 사업 예상안.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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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거시설 아래 고속철도나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건설 계획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이 안전 문제를 이유로 반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민 설득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수색~광명 고속철도 건설 사업을 위한 임시 노선을 확정하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의선 수색역과 경부고속선 광명역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로 국토교통부는 총 24.525km 구간의 노선을 잠정적으로 확정했다. 개통 목표는 2034년이다. 노선은 △행신 △화전 △수색 △가산디지털단지 등을 경유하며 광명과 행신 간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기존 47분에서 25분대로 약 22분 이동 시간이 단축될 전망이다.

    해당 철도 노선을 둘러싸고 최근 지역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영등포구 신길뉴타운 주민들은 고속철도가 아파트와 초등학교 지하를 통과한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신길뉴타운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주민들은 수개월 전부터 노선 구조 변경과 안전 기준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지난해 11월부터 공청회와 설명회 등을 열고 있다.

    신길뉴타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고층 아파트와 70년 된 옹벽 위 초등학교 지하를 관통하는 노선”이라며 “비만 오면 균열이 생겨 보수를 반복하는 초등학교 아래에 시속 250km 고속철도가 지나는 것은 안전상 큰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80m 이상의 대심도 공법을 적용하겠다고 하지만, 고속철도가 아파트 밑을 지나가는 전례가 있는지 묻자 우리가 최초라는 답을 들었다”며 “안전성에 대해 말로는 설명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이 고속철도가 지하로 통과한다고 주장하는 두 아파트의 규모는 각각 최고 27층, 29층에 이른다. 주민들은 노선 변동 등 안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지난 3일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해당 노선은 동작구 노량진 1·5·8구역도 통과해 노량진뉴타운 주민들도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22일 공청회를 열어 주민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철도 노선 두고 주민 갈등 지속

    철도가 아파트나 학교 등 주거·교육시설 지하를 통과하면서 주민들의 안전 우려가 커지는 사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파트 밑에 터널이 뚫리면서 지반침하(땅꺼짐) 등의 문제가 제기된 경우도 있다.

    1984년 준공된 인천 동구 송현동 삼두1차 아파트 지하 약 42m 아래 왕복 6차선 규모의 인천북항터널이 지나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2015년 지하 터널 공사가 시작된 이후 단지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하고 지반 침하 현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터널 굴착 과정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면서 폭파음과 진동을 느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삼두1차 아파트 주민들은 2018년 시공사를 상대로 지반침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아파트에서 발생한 균열의 원인을 터널 공사가 아닌 아파트 자체의 시공 문제로 판단했다.

    최근 GTX 노선을 두고 수도권 곳곳에서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2022년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GTX-C 노선이 아파트 지하를 통과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며 우회 노선을 주장했다. 주민들은 은마아파트가 1970년대에 지어졌고 과거 부지가 늪지대였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시공사였던 현대건설은 아파트 일부를 걸치는 우회안을 제시했지만, 당시 국토부 장관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중앙을 관통하는 노선안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자 공청회를 무산시키고 시위까지 나서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또 국토부에 GTX 관련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 2023년 국토부와 현대건설, 은마아파트 조합은 협의를 통해 곡선 반경을 줄여 단지 지하를 최소한으로 관통하는 방안으로 잠정 합의했다.

    GTX-A 노선 사업을 둘러싼 소송 사례도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주민들은 경기 파주 운정역에서 서울 삼성역을 거쳐 화성 동탄역까지 총 82.1km를 연결하는 해당 노선이 강남구 일대를 통과하는 것과 관련해 사업 취소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애초 한강과 압구정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 한강 우회 노선으로 계획됐으나 예비타당성조사 등을 거쳐 올림픽대로 하부를 활용해 청담동을 통과하는 노선으로 변경되면서 주민들과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 2023년 청담동 주민 247명은 “해당 구간은 지반 침하로 인한 주택 붕괴 위험이 크고 열차 터널 공사 계획에도 문제가 있다”며 사업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국토부가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고 환경영향평가도 부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없다고 판단해 사업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으며 주민들이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거시설 밑에 철도가 지나가서 주민과 갈등을 빚는 문제는 매번 반복되지만, 뚜렷한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며 “국가가 이미 예상안을 제시했다는 것은 그 구간이 기술·경제적으로 최적이라는 의미다. 거액이 투입되는 철도 사업 특성상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GTX가 지하를 통과하는 구간에는 보상금을 지급한 경우도 있다. 해당 토지의 지하 공간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구분지상권’을 설정해 보상하는 방식이다. 구분지상권은 토지의 지상과 지하 중 특정 구역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GTX처럼 대심도(30~60m 이상 깊이로 지하철 등 시설을 건설하는 방식) 공사일 경우 보상금은 토지 가격의 1% 이하로 제한된다. 실제로 GTX-A 노선이 경기 고양시 아파트 지하 대심도를 지나가기로 결정됐을 당시 가구당 최소 3000원에서 최대 150만원까지 보상이 결정된 바 있다.

    안전 문제는 없다지만…주민 불안 해소가 관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주거시설 밑을 통과하는 철도 노선이 안전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지하철이든 고속철도든 주거시설 아래를 지나가도 충분한 깊이를 확보해 시공하면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고속철도는 속도가 빠른 만큼 레일을 더 정교하게 설치해 진동도 줄어든다. 고층 아파트의 경우에도 이를 고려해 더 깊은 지하를 관통하기 때문에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안전상에는 문제가 없지만 주민 반발이 큰 만큼 충분한 설득과 합의 과정이 필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최근 싱크홀 등 사건이 잦아 주민들이 심리적 불안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다”며 “대심도에서 공사가 이뤄지는 만큼 기술적으로는 안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충분한 설명과 설득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미국 IAU 교수)은 “고속철도나 GTX는 대심도 공사이기 때문에 공학적인 문제는 없다”면서 “주민들에게 상황을 잘 설명하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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