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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4 (수)

    급성 백혈병에 이어 심장병까지 이겨낸 소녀, 예술가로 첫발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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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성모병원 ‘솔솔바람’ 1호 작가 정서윤양

    동생, 엄마로부터 두 차례 조혈모세포이식 받아

    병동에서 기억들, 예술로 승화…“작은 행복 전하겠다”

    헤럴드경제

    정서윤 양과 엄마 모습. [서울성모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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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급성 백혈병과 심장병을 이겨낸 소녀가 예술가로 첫발을 뗐다.

    19일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정서윤(현재 15세)이 5년간 투병 생활을 마치고, 부산에 미술 활동을 전문적으로 펼칠 수 있는 공방을 열었다. 영재 피아노 학교 진학을 꿈꾸던 예술적 재능이 미술이라는 꽃으로 피어났다. 솔솔바람은 서울성모병원이 중증질환 환아와 가족을 위해 통합 돌봄을 제공하는 소아청소년 완화의료팀이다.

    서울성모병원과 정 양의 인연은 지난 2021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소아 혈액질환이 의심됐던 정 양은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후,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았다.

    정 양의 병원 생활은 혹독했다. 당시는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된 시기. 정 양의 엄마는 딸의 곁을 지키지 못한 채 병실 밖에서 애만 태워야 했다. 고용량 항암제 치료 후에는 6살 때 진단받았던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PSVT)이 악화해 심장 시술까지 받았다. 첫 번째 조혈모세포이식 이후, 2023년에는 재발 소식까지 불운이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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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윤 양과 의료진 모습. [서울성모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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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양을 지탱한 것은 가족이었다. 지난 2022년 체중 30㎏도 채 되지 않았던 정 양의 동생은 5시간에 걸친 조혈모세포 기증을 견뎠다. 2023년 재발 당시에는 엄마가 나섰다. 가족들은 정 양이 동생으로부터 이식받은 날을 ‘남매의 날’로, 엄마로부터 두 번째 이식을 받은 날을 ‘모녀의 날’이라 불렀다.

    가족의 헌신은 정 양이 예술가로서 첫발을 뗄 수 있었던 이유였다. 힘겨운 조혈모세포이식 과정과 긴 회복기를 겪으면서도 정 양은 아크릴판 위에 가족, 의료진, 자신과 함께 병동에서 지내는 환아들을 그렸다.

    한번 입원하면 적어도 한두 달은 병원에 있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정 양의 그림은 특별한 선물이 됐다. 정 양은 미취학 환아에게 본인이 좋아하는 로봇과 공룡을, 청소년 환아에게 자신을 닮은 수채화 그림을 선물했다. 어느새 병동 아이들의 수액 폴대에는 좋아하는 그림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지난해 입원 중 맞은 생일, 정 양은 입원한 친구들을 위한 작은 피아노 연주회도 열었다. 병동 휴게실에서 열린 자축 생일 연주회에는 가족들과 의료진이 과자를 들고 참석해 서로의 투병 생활을 응원했다.

    그렇게 정 양은 병동 곳곳에 작은 행복을 전했다. 병원 생활을 우울해하거나 병실 밖으로 나오기 꺼려하는 환아, 보호자를 보면 먼저 다가갔다. 그림을 건네며 인사를 시작했고, 마음을 연 아이와 함께 보드게임을 했다. 성탄절, 설날, 생일 등 기념일에는 병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무균병동 안 축제를 열었다. 입원 생활에서 얻은 경험은 웹툰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현재 정 양은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만든 작품과 웹툰, 병동에서 그린 작품들은 미술 공방에 전시했다.

    정 양의 주치의 조빈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서윤이가 이제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열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며 “앞으로도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건강하게 꿈을 넓혀가길 의료진 모두가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솔솔바람 전문간호사 최선희 부장은 “백혈병 치료 과정에서 감염 위험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미술도구가 제한적이었지만, 서윤이는 주어진 것만으로도 받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림을 꾸준히 그렸다”며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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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윤양이 부산에 문을 연 공방. [서울성모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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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로 첫발을 뗀 15세 소녀는 투병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전했다. 병원 안에서 희망을 말하던 정 양은 이제 세상에 행복을 이야기할 계획이다.

    “몸이 아파도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구나, 그런 순간을 꼭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퇴원 후 맞은 바람은 기적 같은 일상이었고요. 앞으로도 그림을 통해 제가 느낀 작은 행복을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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