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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 |
최근 고려아연이 미국 제련소 건설을 추진한다는 소식은 우리 제련산업이 세계 공급망 재편의 한복판으로 들어갈 수 있는 드문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광물·금속은 에너지 전환과 첨단산업의 기반이고, 제련은 단순 제조가 아니라 국가 전략과 직결되는 인프라입니다. 미국이 핵심광물의 자국 내 처리 역량을 키우려는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이 축적해 온 기술과 운영 경험으로 현지 거점을 세운다면 시장 선점은 물론 동맹국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성장 동력일 뿐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의 위상과 협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MBK와 영풍이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제출하며 제동을 거는 모습입니다. 법적 절차는 주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수단일 수 있지만, 시점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해외 대형 투자와 공장 건설은 속도가 곧 비용이자 경쟁력입니다. 인허가, 파트너십, 자금조달, 장비 발주가 맞물린 프로젝트에서 지연은 단순한 일정 변경이 아니라 기회비용의 폭증으로 이어집니다. 투자처의 신뢰가 흔들리면 조건이 악화되고, 경쟁사는 그 틈을 파고들게 됩니다 무엇보다 국내 제련업이 '경영권 분쟁 때문에 글로벌 확장을 못 한다'는 인식을 남긴다면 손실은 특정 회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나아가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될 경우 이에 따른 기업손실과 한미 경제협력 차원의 후폭풍은 그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경영권 분쟁은 종종 '누가 옳으냐'의 문제로만 비쳐지지만, 시장은 '누가 더 빨리 미래를 준비하느냐'를 묻습니다. 주주가치도 결국 장기 경쟁력에서 나옵니다. 미국 진출은 단기 실적을 꾸미는 이벤트가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고 고객·원료·정책과의 연결을 확장하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이를 둘러싼 다툼이 장기화될수록 기업의 전략 실행력은 약화되고, 내부 인재와 협력사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게 됩니다. "이길 때까지 싸우자"는 접근은 결국 모두가 지는 결말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대승적 협력’일 것입니다.
첫째, 미국 제련소 추진 여부를 지분경쟁의 소재가 아닌 산업 전략의 의제로 분리해야 합니다.
둘째, 분쟁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만이 아니라 '산업의 공공성'에 대한 책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제련업은 에너지·환경 규제, 지역 고용, 국가 공급망과 맞물린 분야입니다. 사익의 충돌이 공익의 기회를 훼손하는 순간, 시장과 사회의 지지를 잃습니다. 물론, 대승적 협력은 누구에게도 쉬운 선택이 아니지만, 지금은 협상 비용보다 지연 비용이 더 큰 시점입니다. 미국 진출이 성공하면 그 과실은 특정 지분 집단만이 아니라 국내 소재·장비·물류·환경기술 기업으로 확산되고, 한국의 공급망 위상도 함께 올라갑니다. 반대로 이번 기회를 내부 갈등으로 흘려 보낸다면, 다음 기회는 더 비싸고 더 늦게 올 것입니다.
기업과 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오늘의 결단에서 갈립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를 꺾는 논리가 아니라 제대로된 설계도와 대승적 협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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