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맞붙는 한국과 멕시코 경기 티켓 가격은 최고 700달러(약 103만 원)로 책정됐다. 9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렸던 한국과 멕시코의 평가 전 모습. 2-2로 비겼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
당신은 표 값이 갑자기 5배 올라 한 경기를 보기 위해 1000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월드컵 개최국에 가서 머무르기 위한 항공료와 호텔비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데 표를 사려고 할 때 내 자리가 구체적으로 경기장 어느 곳에 위치하는지는 그 순간에는 알 수 없다. 주최 측이 자리를 배정해 준다.
큰 폭의 가격 인상으로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구매할 수 있는 영화관 등과 비교하면 판매 방식도 불친절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월드컵 표를 팔고 있는 시스템이 그렇다.
FIFA의 가격 인상에 대해 ‘역대급 배신(monumental betrayal)’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축구서포터스(FSE)는 최근 FIFA의 2026 북중미 월드컵 티켓 판매를 전면 중지하고 보완하라고 촉구했다.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은 FIFA가 이번 월드컵부터 경기별로 가격을 달리하는 탄력가격제(dynamic pricing)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인기 경기일수록 더 높은 가격을 적용하도록 했다. 전체 티켓 가격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때보다 5배 올랐다고 분석된다. 조별리그 가격대는 약 180∼700달러(약 26만∼103만 원), 결승전 가격은 약 4185∼8680달러(약 619만∼1285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국-멕시코전의 경우 최저 265달러(약 39만 원)에서 최고 700달러(약 103만 원)에 책정됐다. FIFA는 경기장 좌석을 3, 4개 등급으로 나눠 판매하고 있는데, 일반 구매자는 처음에 등급만 신청할 수 있고 등급 내 어느 열, 어느 번호에 좌석이 배치되는지는 신청 당시엔 알 수 없다. FIFA가 자리를 정하기 때문인데, 가격은 크게 올랐지만 좌석 선택의 제한 등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FIFA는 카타르 월드컵이 포함된 주기인 2019∼2022년 역대 최고인 75억7000만 달러(약 11조2111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전 기간에 비해 18% 늘었다. 비중은 ‘TV중계권료’가 45%, 기업 후원 등 ‘마케팅 및 스폰서’ 수입이 24%, 입장권 및 경기장 부대서비스 판매인 ‘티켓 및 호스피탤리티’ 수입이 13%, 각종 권한을 판매하는 ‘라이선싱’ 수입이 10%, 기타 수익이 8%였다. FIFA는 이 중 티켓 및 호스피탤리티 수입 비중을 이번 월드컵에서 28%까지 높일 계획이다.
이는 ‘TV중계권’, ‘마케팅 및 스폰서’ 등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기존 주 수입원 외에 새로운 돌파구를 티켓 판매에서 찾으려는 시도다. FIFA는 이를 통해 암시장 및 티켓 재판매 시장에서 일어나던 수익을 일부 흡수하는 한편으로 팬들의 구매력 정보를 취득해 정교한 마케팅 전략에 활용할 수 있다. FIFA는 미국 등지에서의 경기 운영비가 비싸고 전 세계적으로 FIFA의 회원 단체들에 수익금을 더 많이 나눠주기 위해 티켓 가격을 인상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동안 FIFA의 폐쇄적인 운영방식 및 부패 스캔들 전력 때문에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가격 차별화 정책은 동네 어디서든 공을 차고 즐길 수 있던 대중적이고 친서민적인 축구의 이미지를 바꾸게 될 것이고 결국 팬들의 계층화 및 양극화를 가져온다. 돈 없는 팬들과 특히 가난한 나라의 팬들에게 월드컵 ‘직관’은 더 꿈꾸기 힘든 사치품이 될 것이다. FIFA는 60달러(약 8만9000원)짜리 티켓을 도입하는 등 반발을 무마하려 했지만 이는 전체의 1.6%에 해당하는 극소량뿐이어서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FIFA 월드컵을 대체할 수 있는 대회가 없는 점, 단지 축구뿐만 아니라 내셔널리즘적 요소가 결합된 월드컵의 열기가 쉽게 식지 않고 있는 점 등으로 인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티켓 구매자들은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독점적 지위에 있는 FIFA의 자신감과 오만함의 근거다. 결국 팬들의 반발과 이로 인한 집단행동으로 인한 수익의 감소가 FIFA에 직접적 압력과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지만 전 세계에 걸쳐 그런 결과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모든 분야가 철저한 수익 추구를 향해 가는 것이 현 세태이지만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였던 축구, 특히 월드컵의 갑작스럽고도 폭력적인 변신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