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쿠팡 물류센터 모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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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9시 40분.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내준 택배, 잘 받았다. 꼬막이랑 홍합이 싱싱하다고 네 엄마는 지금 기분이 좋구나." 어제 늦은 오후였다. 세 시간 넘게 일을 하다가 머리 식히고 운동도 할 겸 근처 시장에 들렀다. 수산물 가게 앞을 지나는데, 유독 물이 좋은 꼬막과 홍합이 발길을 잡아챘다. 멋쟁이 사장님의 상술에 포획당한 김에 흔쾌히 고향에 계신 부모님 몫까지 구매했다. 스티로폼으로 포장한 택배 상자는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 택배로 직접 발송했다. 싱싱하게 살아있는 어패류를 만 하루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을 두고 아버지는 '삶이 참 수월해졌다'고 말했고, 나 역시 이 시스템을 이용할 때마다 눈부신 편리에 거듭 감동했다.
# 지난 11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관련 기사가 떴을 때 내가 정작 놀란 건 3,370만 명에 달하는 회원 숫자였다. 처음에는 노안 탓에 잘못 본 거라 여겼다. 사실을 확인한 순간 어리둥절한 채로 혼자 중얼거렸다. "보자, 보자. 대한민국 인구가 5,115만 명쯤인가? 거기서 14세 이하 유소년이랑 70세 이상 고령자 인구를 대략 1,300만 명으로 잡으면 3,815만 명이 남는구나. 그러니까 나같이 고지식한 몇백만 인구를 제하면, 15세 이상 전 국민이 쿠팡을 쓰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네?" 배신감과 소외감이 왈칵 몰려왔다. 그 많은 이가, 연이어 이런저런 사고와 분란을 일으킨 빌어먹을 기업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선뜻 믿기지 않았다.
"Happy to be here."라고 했다. 사고 이후 쿠팡 대표 자리에 앉은 미국인 해럴드 로저스가 김범석 의장 불출석 사유를 묻는 국회의원 질문에 이렇게 입을 열었다. 두루뭉술한 사과 뒤로는 '이번에 유출된 데이터 유형이 민감도 측면에서 미 증권거래위원회 규정상 중대 사고가 아니며 공시 의무도 없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기가 막혔다.
그 광경을 본 후 주변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아직도 쿠팡을 쓰냐고. 상품 구성이 다채롭고 편리하다고 했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 새벽 배송은 필요악이라고도 했다. 누군가는 이 회사의 압도적인 물류망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덧붙였다. 감정에 휘둘린 쿠팡 탈퇴운동이 얼마나 가겠느냐는 반문도 나왔다. 청문회장에서 목청 높이는 그들도 다 한통속인 거 알지 않느냐고, 설사 쿠팡이 문을 닫는다 해도 다른 놈들이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와 유사한 행위를 반복할 거라는 양비론까지 들었을 땐 속이 상해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가족들부터 설득하기로 했다. 상대적 편리의 대가치고는 모멸감과 죄책감이 너무 크지 않냐고 물었다. 틈새를 딛고 올라설 예비 경쟁자들에게 근본이 틀려먹은 기업의 말로가 어떤지 똑바로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냐며 회원 탈퇴를 종용하는 중이다.
뿌리부터 썩은 나무는 거침없이 뽑아버려야 한다. 그것만이 숲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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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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