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 <31> '구하라법'의 시행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 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혈연이 기준', 민법의 모순점
새해부터 바뀐 1004조 시행
상속분쟁 막는 사전조치 필요
새해부터 바뀐 1004조 시행
상속분쟁 막는 사전조치 필요
삽화=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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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올해 40대 중반인 A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이혼 뒤 아버지는 집을 떠났고 양육비 지급도 없었습니다. 가끔 나타나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했고, 그로 인해 어머니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성년이던 저는 여동생과 의지하며 성장했으며, 둘 다 아직 미혼입니다. 동생은 대기업에 취업했고, 저는 모아둔 돈으로 동생 명의 전셋집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지인의 사망을 계기로 상속제도를 살펴보니, 현행법상 저나 동생이 사망하면 아버지가 상속 재산을 가져간다고 합니다. 양육도, 보호도, 책임도 없었던 사람이 상속인이 된다니…법적으로 보호받을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필자는 가사전문변호사로 일하면서 이런 사연을 수없이 접해왔다. 양육비를 한 번도 지급하지 않은 부모, 폭력과 방임으로 자녀의 삶을 침해한 부모, 미성년 자녀를 버린 부모가 그 자녀의 상속인이 된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가사법 영역의 가장 뼈아픈 모순이었다. 우리나라 상속법은 '혈연' 기준으로 설계되어 왔고, 실제 생활에서의 '보호와 책임'이라는 핵심 요소를 반영하지 못했다. 그 결과, 부모로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사람이 최우선순위 상속권자로서 단독 상속을 받는 일이 반복되었고, 실무에서도 구제수단이 없어 부당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현행 민법이 가진 명백한 한계였다.
그러나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상속권상실제도(구하라법)'는 그 한계를 정면으로 보완한다. 민법 제1004조의2는 피상속인에 대해 중대한 양육 의무를 위반하거나, 학대·폭력·방임 등 부당한 대우를 하거나, 자녀에게 중대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경우 가정법원이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부모의 자격은 책임으로 확인되어야 한다'는 방향을 제도적으로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정 전·후 민법 핵심 비교
개정 전 제1004조는 살해, 상해치사, 유언 방해 등 극단적 행위만을 상속 결격 사유로 규정해 왔다. 양육비 미지급, 폭력과 방임, 장기간의 방치와 단절은 상속 배제 근거가 되지 못했다. 반면 개정된 제1004조의2는 "미성년 자녀에 대한 중대한 부양의무 위반, 피상속인에게 중대한 범죄행위 또는 심히 부당한 대우"를 명시적으로 상속권 상실 사유로 인정한다.
피상속인의 공정증서 유언에 따라 상속권을 직접 배제할 수도 있고, 유언이 없더라도 공동상속인이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은 관계의 경위, 책임 회피의 정도, 상속재산의 형성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상속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A씨가 겪은 양육 포기, 폭력, 장기간 단절은 개정 조항의 취지에 부합하는 사안으로 새로운 법제하에서는 상속권 상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증거 역시 양육비 체납, 주변인의 진술, 상담기관 기록, 폭력 정황, 연락 단절 등 생활 속 자료들이 모두 판단자료가 된다.
이와 함께 중요한 변화가 하나 더 있다. 상속권 상실이 인정되면, 그 부모의 다른 자녀나 배우자가 대신 상속받는 '대습상속'도 허용되지 않는다. 상속권 상실을 우회하는 구조까지 차단한 셈이다. 필자는 이 부분이 실무적으로도, 정의의 관점에서도 반드시 필요했던 개정이라고 본다. 가정 내 방임과 폭력이 남긴 상처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데, 기존 제도는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
다만 A씨가 향후의 상속분쟁을 확실히 피하려면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①법률적으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유언장을 작성해 생전 의사를 명확히 해두는 것이다. 상속권 상실 제도가 적용되기 전에 사망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유언장은 제도적 공백을 보완하는 실효적 수단이 된다. ②동생에게 제공한 전세보증금 또한 사망 시 상속재산이 되므로, 사전 증여인지 생활비 지원인지 그 성격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③상속권 상실 심판을 준비한다면 양육비 미지급, 폭력 정황, 관계 단절 등의 증거 기록을 보관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상속은 한 사람의 삶을 누가 실제로 지탱해왔는지를 평가하는 과정이다. 기존 상속법은 책임을 다하지 않은 부모에게도 상속권을 자동적으로 부여해 왔고, 법의 목적에도 사회적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2026년 개정법은 이 한계를 실질적으로 보완한 변화이며, 상속 구조를 혈연 중심에서 책임 중심으로 이동시켰다. A씨와 A씨의 동생은 이제 법의 안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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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혜 법무법인 에셀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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