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현 뉴욕 특파원 |
중국은 늘 국가통계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두 자릿수 고속 성장기 때도, 한 자릿수 중속 성장기에 접어들어서도 그랬다. 한때 서방 선진국에선 일명 '리커창지수'를 중국 정부 공식 발표보다 신뢰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경제 전문가인 리커창 총리조차 2007년 랴오닝성 서기를 맡던 당시 "중국 국내총생산(GDP) 통계는 인위적이라 믿지 않고 철도 화물 운송량과 전력 사용량, 은행 대출액 등 3가지 지표를 보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중국 통계의 신뢰도는 크게 올라갔지만 여전히 미국에는 중국의 주먹구구 통계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 최근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도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간 중국이 미국보다 1%라도 더 성장하면 그것은 행운이다. 물론 중국 정부의 발표가 아닌 실제 성장률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랬던 미국도 국가통계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올해 1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시장 예상치(3.1%)보다 크게 낮은 전년 대비 2.7%를 기록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 물가를 제외한 근원 CPI도 2.6% 오르는 데 그쳐 2021년 3월(1.6%) 이후 최저치라는 '서프라이즈'였다.
11월 CPI 논란의 단초는 연방정부 셧다운이 제공했다. 셧다운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CPI는 아예 산출되지도 않았다. 11월 CPI의 전달 대비 상승률이 실종된 것도 그 때문이다. CPI 구성 중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주택 분야 가격의 왜곡은 더 심각하다. 리카르도 트레치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코노미스트는 "10월엔 데이터가 없으니 인상률을 0%로 추정했을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10~11월 셧다운 기간 주택 가격을 비롯한 주요 통계치가 미반영되면서 블랙프라이데이(11월 28일 전후) 기간 집중된 할인 가격이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조작의 증거는 없지만 적어도 날림이란 의혹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더 큰 문제는 통계의 정치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노스캐롤라이나를 찾아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거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그런데 막상 발표된 물가 지표는 최근 몇 년 중 가장 좋은 수준"이라고 득의양양했다. 그러면서 "미국 역사상 어떤 대통령보다도 가장 성공적인 첫해였다"고 자평했다. 가뜩이나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고물가에 발목을 잡힐 것이라는 위기론이 집권여당에서 확산되는 만큼 최고의 호재인 셈이다.
국가통계를 둘러싼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은 7월 고용보고서 발표 직후 당시 에리카 매켄타퍼 BLS 국장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해임해 논란을 일으켰다. 5~6월 비농업 일자리가 이전 발표보다 25만8000명 대폭 하향 수정됐다는 이유에서다. 통계 수집 시간 차이로 고용보고서 수정은 늘 있는 일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에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 BLS 국장에 입맛에 맞는 보수 성향 경제학자 E J 앤토니를 앉혀 논란을 키웠다. 앤토니 국장은 취임하자마자 고용보고서를 아예 월별이 아닌 분기별로 축소 발표한다고 밝혀 통계의 정치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통계 논란 속에 그가 내놓은 11월 CPI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선물'이 됐다. 통계의 생명은 객관성이다. 정치에 휘둘리는 통계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임성현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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