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이 대통령의 판단이 옳은 것일까? 수도권 일극 집중이 수도권 집값 등의 근본 원인인 것은 맞다. 그렇다면 수도권 일극 집중을 완화하기에 적합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대전·충남 통합은 그에 적합한 답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일에 매달리다 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은 못하게 된다. 경기도 용인에 추진 중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전면 재검토’가 그것이다.
반도체 공장을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것만큼 균형발전 효과가 확실한 정책이 있을까? 윤석열 정권이 2023년 3월에 발표한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아직 토지 보상 단계에 있다. 지금이라도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백지화하고 비수도권으로 입지를 옮기면, 용인에 원전 10기 분량의 전력을 공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전남, 전북과 충남을 관통하는 여러 갈래의 34만5000V 초고압 송전선 건설도 하지 않아도 된다.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도권 집중 완화 효과가 확실하게 있을 정책은 포기하고, 효과가 의심스러운 정책에 매달린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이재명 정부 5년 동안 수도권 일극 집중은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지금 ‘쓴소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대전·충남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은 대통령의 말에 따라가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김태흠 지사와 이장우 시장의 ‘대충 통합’(대전·충남을 주민투표도 없이 대충 통합하자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한마디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것은 대통령에게도 민주당에도 좋지 않은 신호이다. 대통령이 신이 아닌 이상, 대통령도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여당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자신의 기존 입장을 뒤집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대전·충남 통합이 수도권 일극 집중을 완화할 방안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효과가 불분명하고, 혼란과 갈등만 심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끼리 통합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2010년 출범한 통합창원시(마산·창원·진해 통합)의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통합 전 108만명이 넘던 통합창원시 인구는 2024년 말 100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통합은 불필요한 갈등과 혼란을 초래한다. 통합 과정에서 청사 소재지를 어디로 할 것인지, 통합 이후의 지자체 명칭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소모적인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지역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전은 충남의 동쪽 끝이다. 만약 통합이 된다면 충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촌지역은 더욱 소외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절차적 민주성도 확보되지 않았다. 기초지방자치단체 간 통합의 경우에도 주민투표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키면서 기초·광역을 통합할 때도 주민투표는 거쳤다.
주민투표는 지역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 간 통합만큼 중요한 의사결정이 어디 있는가? 대통령이나 시장, 도지사 마음대로 지방자치단체를 통합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풀뿌리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지방의회 의견을 듣는다고 하지만,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지방의회가 주민투표를 대체할 수는 없다. 주민투표도 없는 ‘대충 통합’은 국민주권을 표방하는 정부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리고 수도권 일극 집중 해소가 목표라면, 행정통합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기업과 사람을 비수도권으로 분산시킬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전기를 수도권으로 끌고 올 생각을 버리고, 재생에너지 전기가 있는 곳으로 산업입지를 재배치해야 한다. 그래야 RE100도 될 것 아닌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대충 통합’이 아니라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전면 재검토’부터 해야 한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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