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국인 지인이 이 사건과 관련한 대화 도중 물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안면인식 없이도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있어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치에 따라 한국도 더 이상 ‘다른 나라’에 해당하지 않게 됐다. 휴대전화 개통 시 안면인증을 요구하는 이유가 ‘대포폰 근절’이라는 점과 신분증을 사용한 기존 인증에 안면인증이 추가된다는 점은 중국과 같다. 방식은 패스 앱 없이 카메라만 보면 되는 중국 쪽이 더 간단하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중국중앙TV(CCTV)는 관씨의 휴대전화 개통을 거부한 대리점 인근의 다른 대리점 여러 곳을 방문해 시각장애인이 신분증만으로 휴대전화 개통이 가능한지 확인했다. 어떤 곳은 가능했다. CCTV는 일부 대리점 직원들이 규정에 없는 일은 하지 않는 형식주의에 매몰돼 있다고 비판했다. 나는 다르게 봤다. 문제는 한 사회에서 기술이 갖는 권위다. AI가 판단을 못한다는데 괜히 나섰다가 문제가 생기면 훨씬 더 크게 문책당한다. 기술 의존이 사람의 마음을 면피 친화적으로 길들였다.
중국 도처에서 요구하는 안면인증은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이 있다. 2013년 베이징 톈안먼광장과 2014년 쿤밍역에서 위구르인이 가담한 무차별 공격 사건이 발생해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중국 정부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보고 ‘테러와의 인민전쟁’을 선언했다.
중국의 기술 기업들은 이 ‘전쟁’을 사업 확장 기회로 보고 정부 관계자들을 접촉했다. 인류학자 대런 바일러가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기술 기업들의 조언에 따라 도시 전역에 설치한 카메라로 모스크 출입이 잦거나 수염을 기른 사람 등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식별했다. 이들이 가는 ‘재교육 캠프’에서는 표정이 울적하거나 불만스러워 보이는 사람을 찾아내 더 강하게 ‘관리’했다. 무표정하거나 웃는 얼굴로 열심히 일하면 재교육 성공이다.
바일러는 중국 기업에 기술을 판 이들은 미국 기업이라고 전했다. AP통신은 지난 9월 인텔, IBM 등의 내부 문서를 폭로해 바일러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애초 테러리스트 식별은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됐다. 정부와 먼저 접촉하고 민간에 진출하는 것이 이들 기업의 사업 모델이다.
베이징의 한 프랜차이즈 헬스장은 기구운동 외 트레이너와 함께 맨몸운동을 하는 구역을 높이 1m가량의 투명 아크릴 울타리로 둘러쌌다. 여기 들어가려면 안면인증을 해야 한다. 헬스장 입장은 출입카드를 찍거나 휴대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안면인증 구역을 추가로 두는 것은 이상하다.
중국은 최근 공공장소의 안면인증 남용에 제한을 두는 추세다. 하지만 ‘안면인증이 불필요한 사회’를 상상조차 못하는 젊은이도 생겨나고 있다. 그 젊은이를 관리하는 학교, 공장, 회사야말로 철옹성이다. 어떤 곳은 구내 음료수 자판기에도 안면인증을 요구하면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시작은 언제나 ‘보안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다.
박은하 특파원 |
박은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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