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감자칩은 주로 미국, 호주산 사용
국내 품종 개발 노력…자급률 75%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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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2024년은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1824년 청나라 상인이 함경도에 감자를 가져온 게 시초로 알려져 있죠. 200년이 흐른 지금, 감자는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가 됐습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6월 21일을 '감자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죠.
그런데 요즘 같은 겨울철 편의점에서 생감자칩 봉지를 뒤집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산지가 하나같이 '미국산' 또는 '호주산'이라는 점입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 감자 생산국인데도 중국산 감자로 만든 제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200년 전 중국에서 들여온 감자를 지금은 중국에서 수입할 수 없다니 꽤 역설적인데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병해충을 막아라
먼저 생감자칩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생감자칩은 생감자를 얇게 썰어 그대로 튀긴 과자입니다. '포카칩', '수미칩', '허니버터칩' 등이 여기에 속하죠. '프링글스'처럼 감자 분말을 반죽해 성형한 뒤 튀기는 성형 감자칩과는 원료 형태가 다릅니다.
생감자칩의 원료인 생감자는 식물방역법상 '수입금지식물'입니다. 해외 병해충 유입을 막기 위해서죠. 다만 시행규칙과 고시로 정한 특정 지역에서만 예외적으로 수입할 수 있는데요.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입식물검역정보에 따르면 가공용 생감자를 수입할 수 있는 곳은 아이다호, 오레곤, 워싱턴 등 미국 3개 주, 호주 일부 지역, 뉴질랜드입니다. 그렇다고 이 지역에서 생산된 감자를 무조건 수입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하죠.
사진=아이클릭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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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가공용 감자의 경우 발아억제제를 처리한 후 처리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고요. 종서인증시스템에 합격된 종자로 재배하고 식물검역증을 첨부해야 합니다. 호주산도 원산지 증명, 밀폐형 트레일러 운송, 등록 인가된 시설에서 세척 등의 절차를 거쳐야 수입이 가능합니다.
검역이 이렇게 까다로운 이유는 명확합니다. 외래 병해충이 유입되면 국내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고, 수출길까지 막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물방역은 식량 주권과 직결된 문제죠.
이런 이유로 미국, 호주, 뉴질랜드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생감자 수입이 불가능합니다. 세계에서 감자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은 아시아인데요. 중국과 인도가 1, 2위를 차지하고 동남아에서도 감자 생산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 감자에 대해서는 병해충 검증이 이뤄지지 않아 수입이 불가능합니다.
결국 감자칩 회사들은 국산 감자가 나지 않는 겨울철에는 미국산이나 호주산 감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농심 포테토칩, 오리온 포카칩, 해태제과 허니버터칩 등 국내 주요 생감자칩은 모두 국산이거나 미국산, 호주산 감자를 씁니다.
우리 손으로 키운 감자
사실 19세기에 감자가 전래된 이후 한동안 우리는 외국 품종에 의존했습니다. 1936년 일본에서 들어온 '남작'이 1970년대까지 주력 품종이었죠. 하지만 지속적인 품종 개발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 감자 자급률은 현재 약 75%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이 변화의 시작은 1961년 강원도 평창 대관령에 들어선 고령지시험장(현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이었습니다. 이 시험장은 외국 품종을 들여와 적응성을 검정하고, 인공교배를 통해 국내 환경에 맞는 새로운 품종도 개발했습니다. 1976년 국내 최초로 교배육성한 '강원계6호'를 선보였고, 1978년에는 미국 품종 '수미'를 도입했습니다.
농심 수미칩. / 사진=농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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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미는 정부 장려 품종으로 선발되면서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수미는 생육기간이 100일 정도로 짧고, 껍질이 얇으며 단맛이 강해 식용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지금도 국내 감자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고 하네요. 다만 수미 감자는 감자칩에 쓰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수분이 많아 튀기면 변색되기 때문입니다. 농심은 2010년 수미로 감자칩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감자를 진공 상태에서 120도 저온으로 두 번 튀기는 공법을 개발해 변색 문제를 해결한 건데요.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수미칩입니다.
오리온의 경우 감자칩을 위해 아예 자체적인 품종 개발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1988년 평창에 감자연구소를 세웠고요. 12년 뒤인 2000년 첫 자체 품종 '두백'이 탄생했습니다. 이후 2023년 '진서', 2024년 '정감'까지 계속 신품종을 내놓고 있습니다. 오리온이 개발한 씨감자는 베트남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신품종 'OA2132' 개발을 완료해 현지 품종보호 출원까지 했습니다. 중국산 감자는 수입할 수 없지만 우리가 개발한 씨감자는 오히려 중국에 진출한 셈이죠.
오리온의 생감자칩 제품, / 사진=오리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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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칩 인기가 높아지면서 감자칩 전용으로 개발된 품종도 등장했습니다. 오리온 포카칩, 농심 포테토칩 등에 쓰이는 '대서'가 대표적인데요.전분 함량이 높고 수분이 적어 감자칩에 쓰기 좋다고 하네요. 다만 대서는 가을 재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립식량과학원은 2007년 가을 재배가 가능한 칩가공용 품종 '고운'을 개발했습니다. 고운은 8월 말에 심어 11월부터 수확할 수 있고 5개월 이상 저장해도 좋은 품질의 칩을 얻을 수 있다고 하네요.
2016년 개발된 '남선'도 감자칩용 감자입니다. 남선은 전분 함량이 높고 당 함량이 낮은 품종인데요. 대서에 비해 감자 속이 비거나 반점이 생기는 증상도 적습니다. 수확 시 감자가 쪼개지는 현상도 대서보다 적고 수량도 많은 편이라고 하네요. 이런 감자칩용 감자들은 해외 수출용으로도 활용된다고 합니다.
국산 감자는 주로 5~11월에 생산됩니다. 이 기간에는 식품업계가 국산 햇감자를 씁니다. 수분과 영양성분이 풍부해 풍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죠. 스낵업계에서는 이 시기에 만든 감자칩이 가장 맛있다고 하네요. 지금 편의점에서 수입산 감자로 만든 감자칩을 먹어보고 내년 햇감자 철에 맛을 비교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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