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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3 (토)

    면 담는 신부·짜장 푸는 스님 ‘따뜻함이 곱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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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28일 서울 종로구 원각사에서 원경 스님(왼쪽에서 세번째)과 이문수 신부(왼쪽에서 네번째)가 노인·노숙인 무료 급식에서 배식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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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각사 연말맞이 ‘짜장면 나눔’
    원경 스님·이문수 신부 뜻 모아
    “두 종교 함께 작은 실천 큰 의미”

    “좀 조져주세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각사에서 서너 명이 칼을 들고 나섰다. 노인 무료급식에 차릴 짜장면에 쓸 단무지를 잘게 썰어달라는 ‘사려 깊은’ 주문이었다. 5년차 봉사자 이덕희씨(63)는 “치아가 없어서 아예 못 씹는 분들이 있으니, 쌀알만큼 작게 다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무료급식은 올해 마지막 일요일에 열리는 것말고도 특별한 일이 더 있었다. 원각사를 이끄는 원경 스님과 천주교에서 온 이문수 신부가 함께 국자를 든 것. ‘불교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불여사)’ 소속 봉사자와 개인 봉사자 약 30명도 손을 보탰다. 봉사자들은 “여러 종교가 모여 작은 실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식사 준비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됐다. 메뉴는 14년차 봉사자이자 불여사 대표인 한영복씨(61)가 중식당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정했다. 절에서 만드는 ‘절밥’이지만, 노인·노숙인 영양을 위해 특별히 고기를 볶아 넣었다.

    오전 11시20분쯤 되자 식사를 하러 온 노인·노숙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따뜻한 계란국부터 한입 들이켠 뒤 짜장면을 먹었다. 대부분은 남성 노인들이었다. A씨는 “마누라와는 사별했고, 집에서 먹는 것보다 여기서 먹는 게 편하다”며 밥을 먹었다.

    식사 시간은 채 10분을 넘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인천에서 온 정모씨(96)는 음식을 다 삼키지도 않은 채 우산을 지팡이 삼아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정씨는 “면이라서 더 빨리 먹었다”며 “이제 김밥 주는 곳에 가서 줄을 서야 한다”고 말했다. A씨도 인근 무료급식소 앞에 다시 줄을 섰다. 끼니를 거를 때가 많은 이들은 무료급식 때만이라도 따뜻한 밥을 넉넉히 먹어두려는 것으로 보였다.

    원경 스님은 “연말을 맞아 양 종교에서 함께 따뜻한 마음을 모으기 위해 이 신부와 함께 무료급식 봉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경 스님은 2015년부터 매일 노인·노숙인에게 점심 무료급식을 내어주는 원각사를 이끌고 있다. 이 신부는 2017년부터 밥을 못 먹는 청년들을 위해 ‘3000원 김치찌개’를 파는 ‘청년밥상문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신부는 “천주교에서는 성탄절 다음 오는 일요일을 성가정 축일로 정하고 세계의 모든 가정이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며 “오늘 오시는 분들께도 원각사가 가족처럼 따뜻한 보금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봉사자로 참여한 윤현우씨(22)는 “6개월 전 대학 수업에서 봉사시간을 채워야 해서 시작했는데, 수업은 끝났지만 의미가 있어서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호근씨(51)는 “다른 종교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모아서 마음의 장벽을 터놓고 일하는 것이 따뜻한 연말에 어울리는 것 같다”며 “미미하더라도 작은 실천을 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명숙씨(68)도 “다른 종교도 함께 화합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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