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판단 범위에서 1·2심 갈려
박근혜 유죄·이명박 무죄 선고
“모호한 법 조항 손질해야” 지적
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고법 형사14-1부(재판장 박혜선)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면서 사법 행정권자로서 양 전 대법원장의 ‘권한’을 1심보다 폭넓게 판단했다. 1심은 그가 재판 사무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어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같이 해석하면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대한 제3자의 관여 행위 같은 ‘위법·부당한 행위를 할 권한’은 애당초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사건에서 무죄를 확정한 2022년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판례가 아니다”라며 배척했다. 1심 재판부가 이 판례를 인용하며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과 배치된다.
판단이 뒤집힌 주요 이유는 직권남용죄 구성요건이 명료하지 않아서다. 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때’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직권’과 ‘남용’의 범위가 애매하고, 입증도 어려워 그간 수사기관에서도 이 죄목을 적용하길 꺼렸다.
그러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이 직권남용으로 대거 기소됐다. 재직 시절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미국 내 소송을 지원하고 차명재산의 상속세 절감 방안을 검토하는 데 공무원들을 동원해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같은 혐의가 적용됐다.
판결은 엇갈렸다.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내도록 요구했다는 혐의에 대해 법원은 유죄로 판단했다. 대통령이 정부 수반으로 모든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기업체 활동에도 직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이 전 대통령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1심부터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으나, 직권남용죄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소송 지원 등 지시가 대통령으로서 공무원에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유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보수단체 지원을 요구해 기소된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해서도 1심 무죄, 2심 유죄로 판단이 갈렸다.
이 때문에 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기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비교형사법학회에 기고한 글에서 “직권의 남용 외에 지위의 남용을 포함시켜 직권남용죄에 의한 법익 보호 기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직권남용죄의 부당한 확대 해석을 방지하기 위해 판례와 학설에 의해 ‘남용’ 행위의 개념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2018년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확정받은 이재명 대통령도 법 개정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실은 최근 직권남용죄가 정치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고, 공직자 등의 처벌 우려를 줄이겠다며 올해 상반기에 구성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손보겠다고 했다.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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