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기지 영안실 직원이 포르말린 용액을 싱크대에 버리는 모습. /사진=녹색연합 자료집 '오염으로 바라보는 용산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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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전인 2000년 2월9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에서 시체 방부처리에 쓰이는 포르말린 20상자가 싱크대에 버려졌다. 유독물질인 포르말린은 아무런 정화 처리 없이 하수구를 통해 한강으로 유입됐다. 이를 지시한 사람은 당시 영안실 책임자였던 육군 군무원 앨버트 L. 맥팔랜드. 그는 "주요 식수원인 한강에 그런 용액을 버릴 순 없다"며 명령을 거부한 부하직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실행을 종용했다. 내부 고발자 양심고백으로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2006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 영화 '괴물'의 모티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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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시키는 대로 해"…명령 거부 하급자에 욕설·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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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13일 환경단체 녹색연합과 사회단체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주한미군이 5개월 전 미 육군 제8군 용산기지 영안실에서 475㎖짜리 포르말린 470~480병을 아무런 정화 처리 없이 한강에 무단 방류했다고 폭로했다.
포르말린은 포름알데히드를 35~40% 농도로 물에 녹인 수용액이다. 독성이 강해 흡입·섭취 시 중추신경 등 주요 기관에 장애를 일으켜 유해 화학물질이자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주로 방부용, 소독·살균용으로 사용되며 용산기지에선 미군 사망 시 본국 송환을 위해 시체를 방부 처리하는 데 쓰였다.
포르말린은 폐기물 처리시설이 있는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보내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당시 영안실 부소장 맥팔랜드는 '포르말린 상자에 먼지가 쌓여있다'는 이유로 사용하지도 않은 용액을 싱크대에 버리라고 명령했다.
맥팔랜드는 부하직원에게 포르말린 용액을 싱크대에 버리라고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사진=영화 '괴물'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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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하급 군무원인 한국계 미국인 A씨는 "서울 중요 식수원인 한강에 암과 출산 장애 등을 일으키는 포르말린 용액을 그대로 버릴 순 없다"며 맞섰다. 그러나 맥팔랜드는 욕설과 함께 "바보냐. 시키는 대로 하라"라며 강압했다.
결국 A씨는 220ℓ 넘는 포르말린 용액을 영안실 싱크대에 버려야 했다. "물에 희석하면 인체에 무해하다"는 미군 측 주장과 달리 A씨는 약품 처리 후 구토와 메스꺼움 등 증상을 호소하며 3주간 병가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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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불출석' 맥팔랜드, 실형받자 항소…징역형 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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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고발자 제보를 받아 사건을 폭로한 녹색연합은 토머스 슈워츠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과 맥팔랜드 부소장을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하지만 기소를 미루던 검찰은 이듬해 3월 맥팔랜드에 대해서만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그러자 법원은 직권으로 맥팔랜드를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미군 측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서 '공무 수행 중에 발생한 미군에 의한 범죄는 미국이 1차 재판권을 가진다'는 조항을 근거로 무죄 혹은 공소기각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죄질 심각성을 고려할 때 한국에 형사재판권이 있다고 보고 2003년 12월 피고인(맥팔랜드) 없이 궐석재판을 진행했다. 그 결과 맥팔랜드는 1심에서 수질환경보전법 위반죄로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국 재판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조차 하지 않겠다는 미군 측 입장과 달리 맥팔랜드는 만료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항소했다. 이후 2005년 1월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맥팔랜드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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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한국 주둔 후 첫 사과…SOFA 환경조항 신설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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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팔랜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봉준호 감독 영화 '괴물' /사진=영화 '괴물'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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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폭로 직후 주한미군은 맥팔랜드에게 감봉 30일 징계를 내리고 다니엘 페트로스키 미8군사령관 명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군 범죄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한 건 1945년 미군 주둔 이래 처음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독극물 방류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고, 사과문 발표자를 주한미군 2인자로 세운 데다 사과 대상을 국민 전체가 아닌 서울 시민으로 축소하려 한 점을 들어 시민·환경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맥팔랜드 사건을 계기로 주한미군에 의한 환경 오염 심각성과 이를 규제할 규정이 없는 SOFA 개정 요구가 거세졌다. 이에 한미 양국은 2001년 SOFA 양해각서인 환경조항에 '주한미군은 대한민국 정부의 환경 법령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신설했으나 오염 문제 해결까지는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 '괴물'을 만들었다. 미군 부대에서 한강으로 방류한 독극물 때문에 돌연변이가 생겨났다는 설정이다. 2006년 개봉한 '괴물'은 한국 영화 사상 네 번째 천만 관객 영화로 등극했다.
김소영 기자 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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