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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15 (일)

    [그때 그 광고]"그래 이 맛이야"…광고로 '1등' 제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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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의 맛' 시리즈로 친근함 강조
    1위 미원 넘은 다시다, 판도 바꿔
    '화학' 이미지 지우고 '자연'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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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비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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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그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그래 이 맛이야"

    정겨운 시골의 겨울 풍경. 아버지와 아이가 공터에서 연을 날린다. 화면 위로 "고향의 겨울엔 소리가 있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흐르고, 까치 우는 소리가 잔잔히 깔린다. 장면은 부엌으로 넘어간다. 도마 위에서 칼질하는 경쾌한 소리가 이어진다. "얘~ 영수야" 담장 너머로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마솥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그 위로 쇠고기 다시다가 뿌려진다. 국물 맛을 본 배우 김혜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래~ 이 맛이야." 이어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쇠고기 국물맛 쇠고기 다시다"라는 멘트가 나오고 '쇠고기 다시다' 제품이 화면을 채우며 광고는 마무리된다.

    음식을 조리할 때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첨가하는 재료를 '조미료'라고 합니다. 국내 최초의 발효조미료는 1955년 대성공업사가 선보인 '미미소'였습니다. 이듬해 동아화성공업㈜(현 대상)이 '미원'을 출시했는데요. 사탕수수 원당을 미생물로 발효해 만든 MSG 기반 조미료였습니다. 미원은 1970년대 중반까지 약 20년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며 '조미료=미원'이라는 공식을 굳혔습니다.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은 1963년 '미풍'으로 도전장을 냈지만, 미원의 벽은 높았습니다. 이후 방향을 바꿔 1972년부터 쇠고기, 생선, 양파 등 천연 원료를 혼합한 복합 조미료 개발에 착수했는데요. 제일제당은 1975년 11월 20일 '다시다'를 출시하게 됩니다. 다시다는 쇠고기와 채소를 배합한 분말형 종합조미료였습니다. 이는 발효 중심 1세대에서 복합조미료 중심 2세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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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다 TV 광고/사진=CJ제일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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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후발 주자인 다시다에 미원은 여전히 넘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다시다가 1세대 발효조미료 '미원'의 아성을 무너뜨리게 된 계기는 바로 '광고'였습니다. 1987년 시작된 '고향의 맛' 캠페인이 그 시작입니다. 제일제당은 제품 기능보다 정서를 택했습니다. 광고에 시골 부엌, 장독대, 어머니의 손맛 같은 이미지를 반복 노출했는데요. 기업명을 앞세우기보다 '고향'이라는 감성을 먼저 각인시키는 전략이었습니다.

    광고 속 메시지는 단순했습니다. "집에서 먹던 그 맛",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국물 맛"을 집에서도 쉽게 낼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조미료의 편의성과 동시에 친근함을 드러내는 방식이었습니다. 다시다는 '감칠맛을 더하는 가루'를 넘어 바쁜 일상에서도 고향의 손맛을 재현해 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했죠.

    광고 편성 전략도 치밀했는데요. 저녁 뉴스와 가족 드라마 사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이는 시간대를 공략했습니다. 핵심 타깃은 주부층이었습니다. "국물 맛이 달라진다"는 직관적인 메시지와 함께 조미료 활용법을 이미지로 전달했습니다. 며느리나 딸이 다시다를 넣어 국을 끓이고 가족이 "역시 우리 집 맛이야"라고 반응하는 장면이 반복됐죠. 설명 없이도 제품의 기능을 알리고 정서를 자극하는 구성이었습니다.

    조미료 패러다임 전환

    1950년대까지만 해도 조미료는 특수 계층에서나 사용하는 사치품으로 여겨졌습니다. 일반 가정 소비는 미미했고 주로 요식업소나 식품가공업체에서 사용했죠. 그러나 1975년 다시다가 탄생하며 2세대 조미료 시장의 포문이 열렸습니다. 1980년대는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고 있던 시기입니다. 손맛을 유지하면서도 조리 시간을 줄여야 하는 수요가 커지고 있었죠. 다시다는 그 틈을 파고들었습니다. 다시다 광고는 '익숙한 맛'이라는 메시지로 고객을 설득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다시다는 출시 두 달 만에 생산량을 10배로 늘릴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다시다는 광고를 통해 단순 조미료를 넘어 '고향의 맛'이라는 상징성을 확보했는데요. 기능보다 정서를 앞세운 1987년 캠페인은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브랜드 자산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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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창기 다시다 생산 현장/사진=CJ제일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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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들어 다시다는 평균 6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1983년을 기점으로 발효조미료 매출을 넘어섰고 종합조미료가 시장을 주도하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다시다는 공식처럼 굳어졌던 '미원=조미료'의 등식을 깨고 조미료의 새로운 대명사로 떠올랐는데요. 조미료 생산에 뛰어든 지 15년 만에 시장 주도권을 장악한 셈입니다.

    다시다의 '고향의 맛' 시리즈 광고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국민배우' 김혜자는 25년간 모델로 활동하며 한국 최장수 CF 모델로 기록되기도 했죠. 다시다는 1991년 51%의 시장점유율을 보인 이래 71.2%(1998년), 76.3%(1999년), 80%(2002년)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왔는데요. 현재 다시다는 국내 조미료 시장에서 약 80%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조미료의 진화

    이런 다시다, 미원과 같은 화학조미료에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1993년 ㈜럭키(현 LG생활건강)는 조미료 '맛그린'을 출시하면서 '화학조미료인 MSG를 넣지 않았습니다'라고 광고했습니다. '맛그린'은 아미노산계 조미료인 MSG 대신 핵산계 물질을 사용한 제품이었는데요. MSG의 유해성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가 없었음에도 논란은 커졌습니다. 결국 논란 속에 럭키는 식품사업부를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MSG=화학조미료'라며 건강에 나쁘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후 조미료 브랜드들은 '화학'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자연'과 '진실'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선회했습니다. 사탕수수가 자라는 자연경관을 보여주며 고추장, 된장과 같은 '발효의 원리'를 내세웠죠. 대상의 '미원' 광고도 변화했습니다. 과거에는 감칠맛을 더하는 기능성을 강조했다면 이후에는 “적정량 사용 시 안전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과학적 근거를 보강하는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이에 업체들은 화학재료가 아닌 자연재료로 만든 새로운 조미료가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출시된 CJ제일제당 '산들애'가 그 출발점입니다. 산들애는 한우, 다시마, 양배추, 대파, 무, 마늘, 표고버섯 등 9가지 자연재료와 발효 성분을 결합한 제품인데요. 광고에서 "자연에서 온 맛"을 반복 강조하며 조미료에 대한 거부감을 낮추는 데 집중했습니다. 인공 첨가물 대신 원재료 이미지를 전면에 배치하면서 3세대 조미료 시장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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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애 제품들/사진=CJ제일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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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은 2010년 콩 발효액 기반 액상 조미료 '연두'를 선보였습니다. "재료의 맛을 살린다"는 메시지로 MSG 중심 조미료와 차별화했죠. 광고는 '덜 넣어도 깊은 맛'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조미료의 역할을 '더하는 맛'에서 '살리는 맛'으로 전환한 셈입니다.

    이후 시장은 세분화됐습니다. 2012년 CJ제일제당은 '명품골드 다시다'에 한우 10% 함유를 내세워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2017년 '다시다 요리의 신'은 간편 조리 콘셉트로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를 겨냥했습니다. 광고의 중심 메시지는 '손맛'에서 다시 '시간 절약'으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형태도 다양해졌습니다. 분말·액상 중심이던 제품군에 코인형 육수가 등장한건데요. 끓는 물에 넣으면 빠르게 녹는 구조로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간편식 확대와 맞물려 코인 육수 시장은 최근 20%가량 성장했습니다.

    그사이 조미료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는데요. 과거에는 '인공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제 '식탁의 해결사'라 불리며 요리를 완성하는 식재료가 됐습니다. 시대에 맞춰 진화하는 다음 세대 조미료는 어떤 모습일까요. 기능을 더할지, 형태를 바꿀지, 혹은 또 다른 가치로 시장을 흔들지. 분명한 건 조미료의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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