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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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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연극계의 대부’ 김정옥 연출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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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김정옥 연극연출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 현대 연극의 기반을 다진 김정옥(94) 연극 연출가가 17일 별세했다. 고인은 극단 민중극장 대표, 극단 자유의 예술감독 등을 지내며 60여년 동안 200여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일본·프랑스·독일 등 7개국 32개 도시에서 순회 공연을 펼치며 한국 연극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기여했다.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대 국문과에 입학한 뒤 서울대 불문과로 옮겨 졸업했고,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불문학과 영화학을 전공했다. 유학 시절 프랑스를 찾은 극작가 유치진(1905∼1974)의 영향으로 연극의 길에 들어섰다. 귀국 후에는 민중극장과 극단 자유 등을 이끌며 한국 연극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1961년 대학 연극 ‘리시스트라다’로 연출 활동을 시작했고, 1963년 민중극장 창단과 함께 본격적인 연출가의 길을 걸었다. 창립 공연은 ‘달걀’, 두번째 작품은 부조리극 ‘대머리 여가수’였으며 초연 당시 박근형, 김혜자, 추송웅 등이 출연했다.

    1966년 무대미술가 이병복 등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립한 뒤 ‘따라지의 향연’(1966) 등을 통해 국내 대표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극단 ‘자유’는 개성 있고 세련된 연극 미학을 선보였으며, 현대 한국 연극을 이끈 배우들의 산실이었다. 박정자, 김용림, 김무생, 최불암, 고(故) 윤소정을 비롯해 김혜자, 고두심, 유인촌, 박상원 등이 이곳을 거쳐 갔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적 표현 양식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무엇이 될고하니’(1978)부터 한국의 전통연희와 굿 형식을 연극에 수용하기 시작했다. ‘피의 결혼’(1984), ‘바람은 불어도 꽃은 피네’(1984) 등을 통해 연극을 서구적인 연극을 한국적 미학으로 재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한국 연극계의 대부’라 불리며 다양한 형태의 실험을 통해 한국적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1995년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연극협회(ITI) 회장에 선출되고 세 차례 연임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 등 10여개국 20여 도시에서 연극공연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2002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최고 등급 문화예술 공로 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다. 일본 닛케이 아시아상(문화 부문),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과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교수, 문화예술진흥원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얼굴박물관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경자씨와 자녀 김승미 서울예대 교수·김승균씨, 사위 홍승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 (02)2258-5940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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