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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7 (금)

    역사의 거울이자 시대의 창 '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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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일보]

    충청일보

    [백목련] 정혜련 사회복지사

    바야흐로 K-컬처가 글로벌 무대의 주류로 우뚝 선 시대다. 수많은 현대극과 장르물이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지만, 그 뿌리에는 늘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와 미학을 담은 '사극(史劇)'이 있었다. 사극은 단순한 오락 콘텐츠를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을 응축한 기록물이자 동시대의 갈망을 투영하는 가장 뜨거운 예술 형식이다.

    사극은 '과거의 언어로 현재를 말하는 장르'다. 우리가 굳이 수백 년 전의 의관을 갖춘 인물들을 다시 불러내는 이유는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권력의 속성, 인간의 욕망, 사랑과 희생이라는 보편적 가치는 시대를 불문한다. 대중은 사극 속 인물의 고뇌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 갈등의 실마리를 찾고, 때로는 현실에서 결핍된 정의와 위로를 대리 만족한다.

    또한 사극은 문화적 주권의 보루다. 역사 왜곡 논란이 끊이지 않는 글로벌 미디어 환경에서, 우리 역사를 올바르고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일은 국가적 브랜드 자산을 지키는 일과 같다. 사극은 가장 한국적인 색채와 건축, 복식, 예절을 시각화하여 전달함으로써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임을 증명하는 최전선의 전사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 대중의 주목을 받은 KBS의 '은애하는 도적님아'는 현대 사극이 가야 할 새로운 방향성과 동시에 극복해야 할 과제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기존 사극의 엄숙주의를 탈피한 '트렌디한 감각'에 있다. 도적이라는 역동적인 소재를 로맨스와 결합하며 젊은 층이 열광할 만한 속도감 있는 전개를 선보였다. 특히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물들의 결핍과 성장을 현대적 감수성으로 풀어내 시청자의 정서적 몰입을 극대화한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다만, 퓨전 사극의 고질적 한계인 '고증의 경계선'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극적 재미를 위해 시대적 맥락이 지나치게 희생되고, 캐릭터의 매력에 비해 서사의 개연성이 부족했던 점은 중장년층 기존 사극 팬덤까지 포섭하기에는 2% 부족한 지점이었다. 장르적 변주가 자칫 역사의 무게감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는 경계심을 일깨워준 대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극의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는 역할 분담이 절실하다. 첫째, 공영방송은 '정통 역사 사극'의 맥을 이어가야 한다. 막대한 제작비와 철저한 고증이 필요한 정통 사극은 상업적 논리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영방송은 시청률이라는 숫자를 넘어, 민족의 기록자로서 대하사극을 제작할 의무가 있다. 뿌리가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정통 사극이 굳건히 버티고 있어야 사극이라는 장르 전체의 품격과 기준이 유지된다.

    둘째, 민간 방송사와 OTT 플랫폼은 '장르의 확장'에 집중해야 한다. 판타지, 스릴러, SF 등 사극과 결합할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좀비와 사극을 결합한 <킹덤>이 세계를 놀라게 했듯, 다양한 플랫폼은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사극을 통해 전 세계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해야 한다. 이는 사극의 외연을 넓히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사극은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체여야 한다. 공영방송이 역사의 뼈대를 굳건히 세우고, 다른 채널들이 그 위에 화려하고 다양한 상상력의 살을 붙일 때 한국 사극은 비로소 완전해진다. 우리는 사극을 통해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꿈꾼다. 제작자들은 역사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을 낚아 올리는 낚시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여전히 사극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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