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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7 (금)

    영화 만들기와 이야기 짓기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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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일보]

    충청일보

    [드라마칼럼] 박상은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우리 삶의 본질은 이야기를 짓고, 하고, 듣는 데 있을지 모른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묵은 이야기와 감정을 해소하고, 계층·성별·인종·직업·세대·지역 등의 경계를 넘어 서로의 실존을 확인한다. 서사학자 폴 리쾨르는 상징과 규범이 얽힌 이야기를 듣기 전의 세계가 플롯화 되어 새로운 서사 텍스트가 만들어진 후, 독자/청자가 자신의 경험과 자기 이해를 재구성한다고 개념화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나의 줄거리로 종합하는 서사화는 자기 이해와 소통에 중요하다.

    이야기의 힘은 강렬하지만 존재감을 주고받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쉽지 않다. 때로 서사정체성은 타자를 배제하거나 특정 집단을 절대화하는 폭력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통의 열망과 좌절 곁에서 살아간다.

    2025년 방영된 SBS드라마 <우리영화>에서 주인공 다음은 유전병으로 죽음을 예감하며, 여러 삶을 살아보고자 배우가 된다. 감독 제하는'칸이 사랑한 거장의 아들'이라는 수식어와 아버지에 대한 상처 속에서〈하얀 사랑〉리메이크 제안을 받고, 실제 환자인 다음을 자문으로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영화>는 드라마 안에서 영화 만들기를 전개하는 극중극 구조로 시한부 멜로의 관습을 비튼다. 다음은 "영화 안에서 자유롭게 사는 내 모습"을 남기려 하고, 시청자들은 그 소망을 따라 영화 만들기에 접속한다.

    또한 질병 당사자의 욕구와 욕망에 대한 편견을 성찰하게 된다. 다음은 "그 흔해 빠진 시한부라는 소재"도 일상이 되면 하루하루가 박진감이 넘치고, 대단한 사랑을 그린 영화를 보면 "견딜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매 순간이 명장면임을 모르는 이들을"바보들"이라 선언하며, 장르 명칭을 활용해 삶이 고유한 생기의 자리임을 환기한다. 이렇게 <우리 영화>는 기존의 시한부 서사와 다른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다음이 자문이 아닌 영화의 주인공이 되면서 환자와 배우 사이의 낙차는 극적 긴장과 효과를 만든다. "환자예요 배우예요? 죽는다면서도 일 년 밖에 못 산다면서요."는 질문은 극 중 핵심적인 긴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감독, 배우 등 스탭들을 통해 <하얀 사랑>이라는 이야기가 지어지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제하가 처음 작성한 대본은 다음과의 대화 속에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개성을 빛나게 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죽을 것이 분명한 다음은 "사람들은 다 죽어, 죽기 전에 늙고, 늙기 전에 젊고, 젊어서 실수 많고 사고치는 존재"라는 친구의 도닥임에 사랑을 고백한다. <우리영화>가 온갖 모략과 시기, 시행착오를 거쳐 질병을 안고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설정의 비현실성을 넘어서는 감동을 준다. 노트북과 녹음기, 배우의 신체, 조명기, 다음의 캠코더 같은 장치들, 그리고 다음의'병실'과 규원의'서점'의 장소성은 드라마의 세부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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