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2.25 (수)

    '우생순 주역' 임오경 의원 "핸드볼, 스포츠토토 편입이 다가 아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포츠토토, 흥미와 재미를 잃고 있어...팬들에 재미와 흥미 줄 수 있는 모델 만들어야"

    [임재훈]

    [SWTV 스포츠W 임재훈 기자] 올림픽 여자 핸드볼 금메달리스트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의 실제 주인공인 임오경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핸드볼의 스포츠편입 관련 포럼에서 팬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베팅 모델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오경 의원은 24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 핸드볼의 스포츠토토 편입 및 종목 혁신 전략 포럼'에 참석했다.

    스포츠W

    사잔: 한국핸드볼연맹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 포럼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소속인 임오경 의원을 비롯해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조계원, 김교흥, 민형배, 박수현, 양문석, 김민수 의원의 공동 주최로 개최됐다.

    이날 포럼에서는 핸드볼이 스포츠토토 편입을 통해 비인기 종목 한계를 넘어 자생력을 갖춘 지속 가능한 스포츠 산업화 모델로 발전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이원재 국민대 스포츠산업레저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은 이날 포럼에서는 안지환 전 대한핸드볼협회 및 한국핸드볼연맹 본부장이 첫 발제자로 나서 한국 핸드볼의 발전과 쇠퇴의 역사, 그리고 회장사 SK그룹의 노력에 대해 전하는 시간을 가졌고, 오자왕 한국핸드볼연맹 사무총장이 핸드볼의 자발적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으로 '비전 2030'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부경대학교 김대희 교수는 한국형 지속가능 스포츠 모델과 정부의 역할을 주제로 정책 제안을 발표했다.

    세 가지 주제의 발제가 끝난 후에는 세 명의 발제자가 무대에 올라 이날 방청석의 전문가, 기자들과 함께 토론을 이어갔다.

    포럼을 마치기에 앞서 임오경 의원은 "최근에 스포츠토토를 보게 되면 총 매출량을 다 못 채우고 있다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라며 "그게 왜 그럴까요?"라고 질문을 던진 뒤 "흥미와 재미를 잃고 있다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밝혔다.

    스포츠W

    발언하는 임오경 의원(사진: 한국핸드볼연맹)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 그는 "핸드볼의 스포츠토토 편입 및 종목 혁신을 위해서는 단조로운 (베팅) 방식보다는 팬들에게 흥미를 더 줄 수 있고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런 모델을 좀 만들어내야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무조건 편입이 다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임오경 의원은 "팬을 어떻게 더 끌어들일까 하는 그런 계획을 다 세워 놓고 편입이 돼야지 무조건 편입시켜놓고 무엇을 한다라는 것은 안 된다라고 생각을 한다"며 "더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잘 세워서 (스포츠토토에) 편입하는 데 어느 종목 못지않게 롤 모델이 되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1971년 전북 정읍 출생인 임오경 의원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8년 국가대표에 처음 발탁됐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한국 여자 핸드볼의 우승은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구기종목 2연패였다.

    이후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1995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뤄냈고, 2000년 임신으로 시드니올림픽에 불참했지만 이후 7년 만에 국가대표에 복귀, 2003년 세계선수권 대회 3위를 차지하며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을 얻어낸 데 이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해 후배들을 이끌고 은메달을 따냈다.

    특히 임 의원이 주축이 되어 아테네올림픽에서 펼친 한국 대표팀의 활약을 소재로 만든 임순례 감독의 영화 '우생순'은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데볼'로 불리던 비인기 종목 핸드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임 의원은 1994년 한국체육대학을 졸업한 직후 일본 히로시마 이즈미(현 메이플 레즈)에 창단 멤버로 입단, 2부 리그였던 팀이 첫 해 1부 리그로 승격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1부 리그 승격된 1995년부터 선수 겸 감독대행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이듬해 만 24세의 최연소 감독(플레잉 감독)이 됐다. 그리고 감독 데뷔 첫 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국내 무대에서도 서울시청 감독을 역임했다.

    [저작권자ⓒ SWTV.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