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2월27일 계간 <창작과비평> 복간 기념 현판식. 왼쪽부터 미술평론가 김윤수, 문학평론가 백낙청. 창비 제공 |
동양 문화권에서 하늘(천간)과 땅(지지)이 만나 이룬 60년(육십갑자)은 인생을 의미하는 무게가 담긴다. 올해 환갑인 1966년생은 한국 민주화의 시간을 나이의 나이테마다 새긴 세대다. 1966년 1월생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삶 또한 그러하다. 약칭 ‘창비’는 한국 최근세사의 굴곡이 오롯이 담긴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
창간호부터 요즘 말로 ‘혁신’이었다. 순한글을 표방했고, 가로쓰기를 시작했다. 더욱 큰 혁신은 내용이었다. “문학하는 자세를 바로잡으려 할 때 문학의 순수성을 문제삼을 필요가 있다.” 28세 청년 백낙청이 창간사 대신 실은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는 선언문이었다.
한국 지성사에서 창비 의미를 한 단어로 집약하면 ‘실천’일 것이다. 창비의 길은 ‘현실의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 변화시키는 ‘실천적 지성’이었다. 이는 동서고금 전통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글로 쓴 것 중 오로지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던 프리드리히 니체처럼 지성은 진리에 대해 책임지려는 각오와 함께여야 한다.
실천의 정신은 1974년부터 ‘창비신서’로 이어졌다.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신경림의 시집 <농무> 등 한 시대의 사유를 뒤흔든 명저들이 세상으로 나왔다. 그 결과 필화·판매금지·강제 폐간 등 수난으로 점철됐지만, 창비는 실천과 지성의 거점이 되었다.
창비가 민주화 시기 청년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 무렵 대학생이라면 창비 한두 권쯤은 있었다. 중학교 시절 외삼촌들 자취방에 뒹굴던 창비에서 방영웅의 소설 <분례기>를 보고, 삶의 징징함에 몸서리쳤던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60주년을 맞은 창비는 24일 “‘K담론의 거점’으로서 역할”(이남주 편집주간)을 이야기했다. 그 바탕 또한 “문학과 정론의 결합”이라는 창비 특유의 실천 정신임은 말할 것도 없다. 실천적 지성의 책무는 시대가 변한다고 달라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귀천과 빈부로 높낮이를 정하지 아니하는 것은 문장뿐”(이인로)이란 성현 말대로 분단의 모순에 맞서온 창비의 언어가 이 시대 ‘빈부귀천’의 지옥도를 해체하는 무기가 되길 바란다.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천둥 같은 희망을 주는 등불이기를 바란다.
김광호 논설위원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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