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2.25 (수)

    이슈 종교계 이모저모

    “교회는 누구도 밀어내고 핍박해선 안 됩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광주 옥합교회 엄기봉 목사

    경향신문

    엄기봉 광주 옥합교회 목사가 무지개색으로 된 십자가를 들고 교회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옥합교회는 3년 동안 성소수자 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9일 찾아간 광주 동구 예술의거리 내 한 상가 건물. 2층에 있는 교회를 바라보니 ‘무지개색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옥합교회’라고 적힌 이 간판의 서체는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길벗체’다. 옥합교회는 길벗체로 간판을 단 한국의 첫 교회다.

    길벗체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고안한 미국 인권운동가 길버트 베이커(1951~2017)를 기리며 만들어진 영문 서체 ‘길버트체’의 한글판이다.

    엄기봉 옥합교회 목사는 24일 “2022년 어느 성도의 기부로 오래된 낡은 간판을 교체하면서 길벗체를 사용하기로 했다”면서 “성소수자를 포함, 한국 사회 약자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되겠다는 다짐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간판 서체에는 길버트의 뜻을 잇는다는 의미와 더불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향한 여정(길)을 함께하는 ‘벗’의 의미도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옥합교회에서는 지난 21일 성소수자와 부모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모임이 열렸다. 2023년 2월부터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자리다. 모임은 이날로 만 3년(36회)을 맞았다.

    교회가 문을 열고 성소수자들에게 공간을 내어준 것은 호남에서 옥합교회가 유일하다. 이전까진 광주·호남지역 성소수자와 부모들의 정기 모임이 없었다. 이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하거나 홀로 사회적 시선을 견뎌왔다.

    옥합교회는 성소수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교회’라고 느낄 만한 십자가 등 관련 물품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창문에는 무지개색으로 칠한 한지를 붙였고 무지개색 십자가도 달았다. 엄 목사는 “모든 생명체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 믿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도 밀어내고 핍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경향신문

    광주 동구 옥합교회의 길벗체 간판. 길벗체는 성 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호남 최초, 성소수자에 문 ‘활짝’
    길벗체로 ‘무지개색 간판’ 달아
    교단 지원 중단 등 불이익에도
    약자들의 ‘울타리·사랑방’으로

    옥합교회 소식이 알려지면서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전남 여수와 목포, 전북 전주와 군산 등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광주에서 3년 만에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당시에는 옥합교회가 사랑방 역할도 했다.

    성소수자 지원 활동을 이유로 옥합교회는 교단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교단은 2024년 6월 엄 목사가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에 참석했다는 점을 들어 ‘포괄적차별금지법 동성애 대책위원회’에 출석하도록 했다.

    교단은 성소수자 지원 활동 중단을 요구했다. 엄 목사가 따르지 않자 교단은 3년간 예정됐던 ‘상가교회 월세 지원금’ 지급을 조기 종료했다. 매월 30만원의 지원금은 옥합교회 같은 작은 교회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옥합교회는 노숙인과 폐지수집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도 이어가고 있다. 다른 교회들의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활동에도 비판적이다. 교회와 일부 목사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반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엄 목사는 “일부 교회가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현수막 등을 거는 것을 보고 실망한 성도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온다”면서 “교회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고 차별이나 혐오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광주지역 한 성소수자 부모는 “성소수자와 부모들은 일부 보수 기독교인의 혐오에 공포를 느끼고 있지만 옥합교회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환대를 경험하고 있다”면서 “신앙이 없어도 옥합교회가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