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공개된 ‘1953년 국군묘지 설치 기록’ 원문. 국군묘지 후보지로 현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위치를 선정하게 된 이유가 담겨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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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작성된 강제동원 명부와 국군묘지(국립현충원) 후보지 선정 과정이 담긴 문건 등 그동안 비공개로 관리돼 온 국가기록물 174만여건이 공개됐다.
25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공개된 주요 기록물은 그동안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던 강제동원 명부와 조선총독부 기록물, 1953년 국군묘지 후보지 선정 문건과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고 분쟁 조정 기록 등이다.
강제동원 명부는 조선총독부가 1939∼1940년 생산한 ‘남양행이민’, 일본 육군성이 작성한 ‘병적전시명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작성한 ‘부로명표(포로명부의 일본식 표현)’ 등 1만6009건이다.
남양행이민 자료는 1930년대 후반 이후 남태평양 적도 부근에 산재하는 섬들인 남양군도로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을 조선총독부가 기록한 목록이다.
행안부는 관계자는 “조선총독부에서 보관하고 있던 자료인데, 일제 패망 후 우리 정부가 그대로 이어받아 보관하고 있다”며 “성명과 생년월일, 성격, 교육 수준 등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 비공개 관리해왔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은 관계자는 “이전에 22종의 명부를 공개했고, 이번에 6종이 추가 공개됐다”며 “일제 강점기 학술 연구와 과거사 규명을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병적전시명부와 부로명표는 일본 육군성과 연합군이 각각 작성한 자료로, 일제 패망 이후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다가 1991~1993년 우리 정부에 이관된 자료들이다.
국군묘지의 설치 관련 기록물은 1953~1954년 국방부에서 생산한 48건이다. 현재의 동작동 현충원 후보지를 선정(1953년 9월)하게 된 과정과 예산, 시설 공사 내역 등이 들어있다.
이 중 ‘국군묘지 설치 경과보고’를 보면 당시 정부는 경주, 대전, 대구, 안양, 서울 일대를 후보지로 놓고 고민했다. 서울에서는 당초 우이동이 최우선지로 검토된 것으로 나온다. 마포구 와우산과 하월곡동, 한남동, 조선신궁, 장충단, 이태원, 서빙고, 김포 염창리, 부평 온수리·오류동 등도 후보지였다.
동작동이 최종 선정된 배경은 ‘국군묘지 설치(1953년)’ 보고서에 나온다. 이 보고서는 “동작동 위치가 황토성 사질점토로 지질이 양호하고, 수해의 우려가 없으며, 서울시내에서 전망이 가능할 만큼 거리가 가깝고, 공사로 인한 인근 주민의 피해가 없음’을 장점으로 분석하면서 관련 사진을 첨부했다. 이후 국군묘지는 1954년 3월 공사를 시작해 1957년에 묘역 조성이 완료됐다.
‘낙동강 페놀 사고 분쟁조정’ 기록물은 1991년 페놀 유출로 낙동강이 오염된 사건과 관련해 당시 환경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1992∼1993년 생산한 40건의 문건 등이 담겼다. 피해 관련 의견 수렴과 주요 쟁점 검토, 임산부 대상 역학조사 결과, 인과관계 검토 등 분쟁 조정 과정이 담겼다.
행안부는 “이번에 174만여건을 공개 또는 부분공개로 전환하면서 국가기록물 공개율이 기존 66.9%에서 68.3%로 1.4%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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