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좋은 시나 소설, 혹은 에세이나 리포트를 읽을 때면 작가를 향해 ‘당신 거기 살아 있었군요’라는 마음이 든다. 글을 통해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글을 읽는 동안 나도 잠시 그의 삶을 지켜보는 증인이 된다. 출생지나 나이, 성별, 인종 불문하고 살아 있었다는 기록을 누군가 읽어 함께 증인이 되어 주는 것이 문학의 진짜 기쁨 아닐까?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언제나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글을 오래 쓰며 몇 번 절필의 위기를 겪었다. 재작년 겨울쯤 대학원에서 만난 선배 시인은 내 시를 읽고 “바닷가에서 태어났나요?”라고 물었다. 시 몇 편만 읽고 그 사실을 맞춘 사람은 처음이었다. 글을 오래 쓴 사람들은 통찰력이 뛰어나고, 인간이 이해 가능한 범주를 넘어선 신기(神氣) 같은 것이 있나 하는 신비로움도 든다. 그래서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육지 사람들은 바다를 ‘쓰려고’ 하는데, 연우 씨의 시에는 바다가 그냥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답했다.
그렇다. ‘쓰려고’ 하는 것이 문제였고 나를 지치게 했던 것이다. 내게 ‘있는’ 것을 꺼내서 보여주면 되는데 언어라는 추상적 질료를 통해 ‘쓰려고’ 하니 막혔던 것이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내 안의 시를 쓰는 동력은 밀물과 썰물이 영원히 교차하며 파도를 일으키는 모양일 것이다. 파도는 매일 치지만 모양이나 크기는 매번 다르다. 부서져 흩어지고 나면 다신 돌아오지 않는 모든 파도 같은 순간들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마음을 쓴다. 지금 눈앞의 파도가 부서졌어도 괜찮다. 다음의 파도가 일고 있다.
/연우·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연우·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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