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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6 (목)

    [서아람의 법스타그램] [5] 명절 직전엔 사람을 잡아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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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민족 대이동’만큼은 아니라도 명절 연휴는 여전히 큰 행사다. 아무리 원수 같은 가족들이라도, 미운 정 고운 정 반반이라도 얼굴을 보면 반갑다. 산더미 같은 명절 음식들을 생각하면 체중계 걱정이 앞서면서도 설레는 걸 어쩔 수 없다. 이 틈을 타 해외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천공항도 붐빈다. 그런데 명절은 형사부 판사, 검사, 형사 변호사에게는 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니나 다를까.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전화가 걸려 왔다. 보석을 신청했던 의뢰인의 남편이다. 연휴 시작 바로 전날 기적적으로 보석이 받아들여져, 지금 아내를 데리러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보석 심리 기일이 명절과 가깝게 잡혀서 혹시나 했는데, 잭팟이 터졌다. 의뢰인의 남편은 가족이 함께 설날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울먹였다.

    엄숙하고 삭막해 보이는 법원도, 검찰청도 결국 사람이 살고 사람이 일하는 곳이다. 판사도 검사도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설날, 추석,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마음이 너그러워지곤 한다. 사실 그즈음에는 재판 자체가 많이 잡히지 않는다. 판사, 검사, 변호사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사위고 며느리여서 차표를 예약하고 차를 몰고 고향으로 가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시즌에는 피고인이나 증인의 재판 불참률도 높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분위기를 느낄 것이다.

    많은 형사 재판부에서는 명절을 목전에 두고는 사람을 잡아넣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법정 구속을 할지 아니면 불구속으로 일단 실형 선고만 할지 고민되는 사건이 있다면 아무래도 후자로 기울게 되고, 반드시 법정 구속을 해야 하는 사건이라면 차라리 선고 날짜를 조정하기도 한다. 집행유예 선고율이나 보석 인용률이 아주 조금이나마 높아지는 것도 바로 이 시즌이다. 지금까지 법조계에 몸담으면서 크리스마스이브나 설 전날에 법정 구속 판결이 나오는 건 대여섯 번밖에 보지 못했는데, 보통 선고일에 한두 건 이상은 반드시 법정 구속이 나온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적다.

    범죄 기소와 공소 유지의 책임을 진 검사 입장에서도, 하필이면 명절 시즌이나 연말에 구속 장면을 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다. 검사가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해서 일단 심문을 위한 영장을 발부받으면 다음은 심문 일정을 잡게 되는데, 그때마다 단골로 듣는 멘트도 ‘명절까지만 쇠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 부탁 또한 가급적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내게 일을 가르쳐준 검사 선배는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못 먹게 될 어머니 집밥, 든든히 먹고 인사도 제대로 올리고 오라는 뜻이라고.

    명절이란 게 뭘까.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과 음식을 나누며, 공동체의 연대를 느끼는 날들이다. 물론 법은 감정이 아니라 원칙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정의는 때때로 온기를 필요로 한다. 영장에 도장을 찍기 직전, 달력의 빨간 날을 보며 한 번 더 고민하는 재판장의 심정을 그려보면, 내 마음도 한결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고속버스에 오르며, 모두가 행복한 새해가 되길 빌었다.

    [서아람 변호사·前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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