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생활안전硏 분석]
소비자들 주방 세제 등에 부정적
기업은 ‘무첨가’ 마케팅으로 현혹
노출빈도 고려한 ‘위해성’ 따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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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화학물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습니다. 비과학적인 거부감을 키우면 소비자가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게 됩니다.”
최재욱 국민건강생활안전연구회 회장은 27일 소비자들에게 팽배해 있는 케모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화학물질 무첨가’·‘불검출’과 같은 광고 문구에 이끌리는 탓에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은 커지고 기업들은 비효율적인 마케팅 경쟁에 매진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 없이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무조건적인 반감을 갖기보다 어떤 물질에 얼마나 노출됐을 때 위험한지를 뜻하는 ‘위해성’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케모포비아는 소비자들에게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생활안전연구회가 2023년 성인 20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주방 세제, 화장지, 일회용 식기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에서 유럽 8개국 563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0%는 “일상에서 화학물질 접촉을 피하고 싶다”고 답하고 39%는 “화학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며 화학물질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이에 실질적인 위협이 없다는 당국의 발표에도 소비자 불안이 쉬이 잠재워지지 않기도 했다. 2017년 일부 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검출됐다는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61개사 666개 제품을 전수조사한 결과 일부 제품에서 해당 물질이 검출됐으나 문제를 일으키기에는 미미한 양이라고 밝혔다. 유해한 물질이 있지만 위해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지갑은 ‘유기농’이나 ‘화학물질 제로’를 표방하는 제품에 쏠렸다. 국민건강생활안전연구회 소속 연구팀에 의하면 논란 이후 생리대 판매량은 변함이 거의 없는 데 비해 매출액은 약 39.2%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현상은 “자연은 무조건 선하다”는 식의 비과학적 인식에 의사결정이 휘둘린 탓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국민건강생활안전연구회 관계자는 “화학물질이 끼치는 피해는 특정 용량 이상에서 급증한다”며 “존재의 유무보다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과학적 맥락을 소비자들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충분한 정보 제공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해성 중심의 화학물질 표시 체계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화학물질의 유무를 표시하는 데 집중해 소비자들의 공포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새로 도입한 ‘초록누리 나뭇잎 마크 제도’의 경우, 한눈에 화학물질의 유해성 정보를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이 화학물질을 거르는 지표 역할을 한다는 점이 문제다.
초록누리 나뭇잎 마크 제도는 상품의 화학물질 유해성 정보를 나뭇잎 개수로 등급화한 새로운 표시제다. 전체 성분 중 △유해 우려가 없는 물질 △유해 우려가 낮은 물질 △용도·제형에 따라 사용이 가능한 물질 △안전한 원료 등이 각각 몇 %인지 표시하고 성분별 유해성 정도를 나뭇잎 개수로 4단계로 나타내는 방식이다.
제2차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관리 종합대책에서 정부가 온라인 감시 판매 페이지를 2만 개에서 4만 5000개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식의 성과 지표(KPI)를 제시한 것도 정책의 무게추가 ‘위해성 설명’보다 ‘유해성 적발’에 쏠려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건강생활안전연구회 관계자는 “이런 방식은 행정적 명확성은 높지만 소비자에게는 위험한 제품이 많아졌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진정한 소비자 보호는 위해성을 이해 가능한 언어로 설명해 사용 단계의 오남용을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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