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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1 (일)

    산악스키, 남극 훈련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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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말]

    [김영미의 남극, 끝까지 한 걸음] (18)

    조선일보

    2013년 3월 산악스키 훈련을 위해 이탈리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를 배경으로 후배(오른쪽)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영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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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28. / 운행 21일 차. 위도 83도 33분 / 누적 거리 431.07㎞ / 해발고도 1226m.)

    아침부터 가민 인리치(GPS 위치 추적 장치)를 통해 송희(한국 비상 연락망)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저녁 식사 후 잠자리를 펴니 밤 10시였다. 침낭에 몸을 반쯤 들인 채 오랜만에 한국에 위성 전화를 걸었다. 한국은 아침 10시다. 계속 스킨(스키 바닥에 탈부착하는 미끄럼 방지용 테이프) 문제가 발생했고 송희를 통해 한국에 전달된 이 내용은 ALE(남극 물류 대행사)에도 전달됐다. 스킨이 없으면 스키를 신고 걸을 수 없다. 스키를 사용하지 않고 남극을 횡단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두 다리가 뻐근했다. 남극점에서 식량을 보급받을 때 여분의 스킨을 받을 수 있게 조치를 했다. ALE는 계속 남극점까지의 중간지점(누적 거리 550㎞)인 티엘 코너에서 스킨을 보급해주겠다고 했다. 이미 거절했는데 한 번 더 송희를 통해 반복 확인을 한 것이다. 하나뿐이라 불안은 여전했지만 스킨 하나 때문에 다시 경험할 수 없는 남극점까지 무보급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가는 데까지 가고 떨어지면 그때는 걷자!’는 마음으로 중간 지원을 거절했다. 다행히 여분으로 챙겨온 스킨이 잘 견뎌줬다.

    스키를 신고 걷는 것은 보행법이 달라 전혀 다른 근육을 쓴다. 이런 근육은 겨울 훈련만으로 1~2년 사이에 만들기 힘들다. 2023년 남극점에 갈 땐 산악스키 15년 차였다. 2009년에 처음부터 산악스키로 입문했다. 한 시즌을 두 시즌처럼 훈련했고 3년 차가 되자 스키를 위한 근육이 좀 단단해졌다. 해 뜨기 전 랜턴을 켜고 스키 슬로프를 역주행해 발왕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야간까지 종일 스키장 죽순이로 몇 년을 보냈다. 스키를 신고 뛰어서 정상에 서면 옷은 다 젖어 있었다. 해발고도가 1458m인 발왕산의 새벽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져 남극의 추위에 버금간다.

    용평스키장과 20㎞ 떨어진 같은 용평면에서 나고 자랐지만 스키는 배우지 못했다. 산비탈에서 비료 포대나 탔지 스키는 너무 고급 스포츠였다. 산악스키는 크로스컨트리보다 더 높은 오르막 경사를 오를 수 있다. 말 그대로 ‘스키 등산’을 할 수 있다.

    내가 산악 스키에 입문한 계기는 에베레스트 등정(2008년) 후 하산할 때 이탈리아 산악인과의 만남이었다. 우연히 같은 롯지에서 만나 짧은 얘기를 나눴다.

    “히말라야 등반을 위해 어떤 훈련을 해요?” “암벽이나 빙벽도 타요?” 서로 궁금한 걸 물어봤다. 그러다 내가 “러닝도 하고 사이클도 타고 회복을 위해 수영장도 다녀요”라고 했더니 그는 웃으며 “뭘 그렇게 많이 해요. 올림픽은 왜 안 나갔어요”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2박 3일 이상 산골짜기를 돌고 돌아 스키 마운티니어링(산악스키)을 해요. 스키는 탈 줄 알아요?” “아니요!” 그의 놀란 눈이 똥그래져서 되물었다. “왜요? 한국에 스키장이 없어요?” “있는데 슬로프는 인공 눈이 많고, 산엔 나무가 너무 많아서요.”

    하산길에 만난 이탈리아 산악인은 14좌를 최초로 등정한 라인홀트 메스너와 고향이 같았다. 에베레스트의 8000m 위에서 스키로 활강한 한스 카머란더의 고향이다. 돌로미티와 산악스키는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에베레스트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인터넷에서 ‘유럽 스키 마운티니어링’을 검색했다. 여러 사진 중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를 배경으로 여성 스키어가 빨간 재킷을 입고 설사면을 오르는 사진에 시선이 고정됐다. 이때부터 내 동심의 ‘알프스 소녀’는 ‘산악스키 소녀’로 바뀌었다. 나는 무릎을 쳤다. ‘바로 여기야!’ 여기부터 ‘나의 남극’은 산허리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마냥 몽글몽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의 가셔브룸 2봉(2008년)을 함께 등반했고 철인 3종을 하는 산악부 후배 가영이와 남극 계획을 구체화했다. 1차 돌로미티 산악스키 전지훈련, 2차 바이칼 호수, 3차 남극점 원정이라는 계획 아래 이탈리아행 항공권을 끊었다. 두 대의 산악스키가 필요했다. 내가 가진 구두 중 가장 비싼 산악스키 부츠를 사려고 체력 훈련용 사이클을 팔았다. 중고 바인딩을 샀고 스키 플레이트 한 세트를 빌렸다. 2m 길이의 스키 가방에 스키 두 세트를 넣고 40일의 산악스키 전지훈련을 떠났다. 배낭엔 특별히 바람막이, 고어텍스, 패딩을 포함한 빨간 재킷 세 벌을 챙겼다. ‘알프스의 산악스키 소녀’와 같은 자리에서 인증샷을 찍겠단 생각에 설렜다. 무엇보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를 긴 여정에 함께 할 친구가 있다. 그 첫걸음에 돌로미티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 매일같이 스키를 탔다. 처음부터 혼자 남극으로 떠날 계획은 없었다.

    ※아시아 최초로 남극 대륙을 단독으로 도보 횡단한 산악인 김영미의 ‘남극, 끝까지 한 걸음’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김영미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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