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원유 30% 길목 긴장 고조
韓 원유 70% 중동 의존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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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의 전격 공습 이후 중동 정세가 급랭하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한 데 이어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사망 발표까지 겹치며 긴장은 정점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세계 에너지와 금융시장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세계 원유 해상 수송의 20~30%가 지나는 전략적 관문이 흔들리자 국제유가 100달러 재돌파 가능성도 거론된다. 공급 차질이 현실화하면 글로벌 물가와 환율 시장에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진다.
한국도 충격권에 들어 있다. 수입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고 그중 90%에 달하는 물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봉쇄가 현실화하거나 장기화할 경우 국내 에너지 수급과 산업 전반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 에너지 동맥 막히나
지난 28일(현지시각)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자국 매체를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시행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에브라힘 자바리 혁명수비대 소장은 알마야딘 TV 인터뷰에서 봉쇄 조치를 공식화하며 강경 대응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란 타스님 통신은 혁명수비대가 각국 선박에 "현재 해협 통행은 안전하지 않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로이터와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유럽연합(EU) 해군 임무단은 혁명수비대로부터 "해협을 통과할 수 없다"는 초단파송신을 청취했다. 일부 선박은 즉각 항로를 틀었다는 전언이다.
영국해사무역기구도 걸프 해역 선박들로부터 해협 차단 메시지를 수신했다고 밝혔다. 다만 공식 선전포고나 적법 절차에 따른 조치가 아닌 만큼 국제법상 구속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정부는 자국 상선에 걸프 해역 항해를 자제하라고 권고하며 긴급 대응에 나섰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30%가 지나는 최대 에너지 요충지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등 주요 산유국의 수출 원유가 이 통로를 통과한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관문으로 꼽힌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박이 거세질 때마다 해협 봉쇄를 위협해 왔지만 실제 차단 조치를 공식화한 것은 이례적이다. 봉쇄가 현실화하거나 장기화할 경우 국제 해운과 에너지 공급망 전반에 직격탄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시장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국제 기준유인 브렌트유는 전날 2.5% 오른 배럴당 72.4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7월 이후 최고치다. 올해 들어 상승률은 20%에 달한다. 주말로 선물시장이 휴장한 가운데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장중 75달러를 넘어섰다. 하루 만에 두 자릿수 급등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추가 급등 가능성을 경고했다. JP모건은 해협이 전면 봉쇄되고 군사 충돌이 확산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단기 80달러 돌파를 예상했고, 바클레이즈는 최악의 경우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위험회피 심리도 빠르게 번졌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공습 직후 급락했다가 일부 낙폭을 만회했다. 디지털 자산 시가총액이 단기간에 1000억달러 이상 증발했다는 추산도 나왔다. 반면 금과 은 거래는 급증했다.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전형적 장세다.
'마진 스퀴즈' 공포?…정유·석화업계 셈법 복잡
변수는 확전 여부다. 하메네이 사망 발표로 이란 내부 권력 지형이 요동칠 가능성이 거론된다. 중동 내 친이란 세력이 연쇄 대응에 나설 경우 원유 공급망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한국 경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수입 원유의 약 70%, LNG의 2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90%가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봉쇄가 현실화되면 단기적으로는 약 7개월분 전략 비축유로 버틸 수 있지만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대체 수입선 확보는 쉽지 않다.
정유업계는 셈법이 복잡하다. 유가 상승은 재고평가이익과 정제마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고유가가 길어지면 글로벌 소비 둔화와 경기 위축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꺾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1조6000억원대 합산 영업손실을 낸 석유화학 업계는 한층 더 긴장하고 있다. 원유 가격 상승은 곧바로 나프타 가격을 끌어올린다. 제품 가격은 묶인 채 원가만 뛰는 '마진 스퀴즈'가 심화될 수 있다. 여기에 해상 보험료와 물류비 상승까지 겹치면 수익성 압박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정부도 긴급 대응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관계 부처 긴급회의를 열어 에너지 수급 상황과 교민 안전을 점검했다. 비축유 방출 여부와 수입선 다변화 방안도 테이블에 올랐다. 한국무역협회는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수출액은 0.39% 감소하고, 수입액은 2.68%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제조업 생산비용은 평균 0.68%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초기 충격이 아니라 충돌의 확대 여부"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제한적 범위에 머물 경우 시장 불안은 점차 진정될 수 있다. 그러나 충돌이 확산돼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유가 급등과 환율 불안, 금리 경로 재조정 등까지 이어질 수 있다.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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