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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2 (월)

    [박상훈의 민주주의 시간]한국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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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기 전 민주주의는 ‘신분질서 폐지’를 뜻했다. 1835년 출간된 토크빌의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엔 이미 세습 군주와 귀족이 없었다. 프랑스 귀족 출신 토크빌이 보기에 신분 불평등의 종식은 피할 수 없는 ‘섭리’ 같았다.

    1세기 전 민주주의는 ‘재산에 따른 권리 부여 제도의 철폐’를 의미했다. 한 지역이 걷은 세금의 크기로 의원 수를 결정했고, 재산 없는 이는 투표할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 영국에서 재산에 따른 선거권 제한이 철폐된 것은 1918년이었다. 1원 1표에서 1인 1표로 바꾸는 것, 그것이 당시의 원칙이었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달리 설명할 수도 있다. 첫째는 배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에 따라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봉건제 신분질서의 붕괴를 주도한 사회계급이 부르주아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의 세계관에 따라 실현된 것이 민주주의이고, 그런 기준에서 보면 1860년대 중반 미국의 남북전쟁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기록된다.

    둘째는 디트리히 뤼시마이어 교수 등이 집필한 <자본주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주장을 따르는 것이다. 부르주아가 자유시장 확대와 신분질서 폐지를 요구한 것은 맞지만, 보통선거권 등 평등한 시민권은 노동자의 요구였다. 부르주아는 이를 두려워했고 때로는 강하게 억압했다. 그것을 이겨낸 “노동자의 조직된 요구가 없었다면” 민주주의도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9세기 중엽 노동자 참정권 투쟁(차티스트 운동)은 ‘최초의 정치적 노동운동’이 되고, 20세기 들어와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이 주도해서 복지국가를 이룬 것은 ‘민주주의의 정치·경제적 성취’로 평가된다.

    반독재 투쟁 거치며 민주주의 완성

    한국의 경험은 달랐다. 80년 전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식된 서구식 정치 질서’였다. 그 안에서 독재와 반독재의 진통을 겪으며 민주적 관념도 여러 차례 변화했는데, 결국에는 학생운동이 마무리를 지었다. “학생운동 없이 민주주의 없다”고 요약할 만한 역사였던 셈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은 “민중 민주주의”를 표방했다. 그들은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과 연대하려고 꾸준히 노력했다. 경제발전의 성과를 좀 더 평등하게 분배하는 문제에서부터 문화와 예술, 교육 분야에 이르기까지 민중 담론이 압도한 때였다. 그 뒤 유행 같았던 민중 담론은 점차 사라졌지만, 평등의 의제는 남았다.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는 오랫동안 한국 정치의 중심 의제였다. 진보만이 아니라 박근혜로 대표되는 보수도 이 의제를 내걸고 집권했다. 유승민의 “‘중부담·중복지’를 위한 여야 합의 기구 제안”도 인상적이었다.

    2026년의 대한민국은 완전 딴판이다. 평등은 물론이고 복지국가나 경제민주화 담론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것들은 “조국 근대화”나 “잘살아 보세”와 다를 바 없이 옛날이야기 같아졌다. “86 운동권”으로 표현되는 지금의 정치 엘리트들은 다른 가치에 몰두해 있다. 그들은 말한다. 인공지능과 자본시장, 가상자산이 대세다. 선진국을 넘어 초일류 강국이 눈앞에 있는데, 진보니 보수니 평등이니 복지니 하는 낡은 관념에 왜 집착하는가. 스마트 투자자가 되라. 당신도 자본수익을 공유하는 경제 시민이 될 수 있다.

    한 국가 안에 두 국민이 있다. 한쪽에는 주식과 코인 투자로 흐뭇한 국민이 있다. 대통령은 연일 그들을 치켜세우고 스스로 앞장선다. 지금 정부에서 최고의 권리 시민은 그들이다. 다른 쪽에는 우울한 국민이 있다. 공실률로 상징되는 영세자영업자, 66세 이상의 40%에 해당하는 빈곤 노인, 구직 활동을 단념한 20대, 수도권과의 격차에 절망하는 지방민 등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서민이다. 서울에서 밀려나고 수도권에서도 밀려나는 중인 주변인이다.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종의 비가시적 무권리자다.

    집권 연합 안에는 두 개의 평등 관념이 있다. 하나는 이재명식의 1원 1표 평등주의다. ‘밸류업’ 종목을 찾아 투자하라. 자본 수익률을 믿어라.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끝났다. 정부가 이를 보증한다.

    자산가 중심 금융민주주의로 변화

    다른 하나는 정청래식 1인 1표 평등주의다. 그는 당원 주권을 말한다. 매달 1000원만 투자하라.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대표·대선 후보 경선 참여자를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63만명의 권리당원이 여당 대표를, 68만명의 권리당원이 대통령을 만든 나라다. 그들의 6개월 당비 40억원이면 730조원 국가 예산을 주무른다. 입법도 자유롭다. 민주당이 이를 보증한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중산층 민주주의다. 주식과 아파트로 상징되는 수도권 자산가 민주주의다. 그들의 진보는 검찰개혁처럼, 서민과 무관한 권력 엘리트만의 관심사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금융 자본주의의 하위 개념이다. 한국의 때늦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이재명·민주당 정부에서 완성될 모양이다.

    경향신문

    박상훈 정치학자


    박상훈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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