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쇼크 10년, AI와 인간 공존 실험] 〈下〉 현실화된 위협… 기로에 선 산업계
웹툰-게임업계 ‘일자리 습격’ 공포… 법조-의료계 등 전문직도 큰 영향
“화이트칼라 대체” “새 일자리 창출”… 글로벌 리더-전문가 의견도 각각
“AI 활용 ‘명확한 기준’ 만들어야”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의 인공지능(AI) 기반 웹툰 제작 스타트업 ‘툰스퀘어’에서 이호영 툰스퀘어 대표(오른쪽)가 캐릭터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AX디자이너와 소통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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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만난 웹툰 작가 신현정 씨(41)가 웹툰 2컷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았다. 인공지능(AI) 기반 웹툰 제작 스타트업 ‘툰스퀘어’ 소속인 신 씨는 “웹툰 30컷을 손으로 그리면 2주 정도가 걸리지만, AI를 활용하면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게임 개발 스타트업 ‘앵커노드’의 개발자 이기우 씨(29)도 AI를 활용해 게임에 적용될 무기 수백 가지를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개발자가 ‘양손 검’ 등 무기의 기본적인 형태를 선택하고 세부 요구사항만 몇 가지 입력하자 AI가 자동으로 무기를 줄줄이 뽑아냈다. 앵커노드는 이 같은 기술을 이용해 지난해 6월 ‘스냅타운’이라는 게임을 정식 출시했다. 게임 개발부터 앱스토어 출시까지 모든 과정을 2주 만에 끝냈다.
“다가올 거대한 미래를 예상할 수 없어 두려움이 더 크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프로 바둑 기사들은 이같이 고백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본격적으로 AI가 인간의 손발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산업계 곳곳은 몸살을 앓고 있다. ‘내 일자리’도 AI가 앗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는 업계를 불문하고 거대한 파고로 다가오고 있다.
● 전문직도, 창착계도 AI 습격에 진통
전문직도 AI의 습격에서 예외는 아니다. 사법부는 최근 자체 AI 플랫폼을 구축해 재판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시범 적용했다. 특정 사건의 쟁점을 질문하면 AI가 유사한 판례를 검색하거나 법리와 관련된 법령을 종합해 답변하는 방식이다. 변호사 업계에서 법률 AI의 도입을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재판부에까지 AI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올 1월에는 한 리걸테크 스타트업의 AI가 원심 재판부의 판단 오류를 발견하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의료계에서는 네이버가 서울대병원과 개발한 의료 특화 대형언어모델(LLM) ‘K메드-AI’가 지난해 의사국가고시(KMLE)에서 평균 96.4점을 받아 충격을 던졌다. AI가 영상 분석 등에서 뛰어난 분석 능력을 보이고, 의료 현장에까지 진입하려 하자 대한의사협회는 AI가 채팅 등 비대면 방식으로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는 의료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지난해 말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AI가 ‘창의성’마저 넘보면서 창작계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웹툰 업계가 대표적이다. 아직 ‘AI를 활용해 만든 창작물을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 속에 지난해 인디게임어워드의 올해의 게임(GOTY)과 주요 상을 휩쓴 화제작 ‘33원정대’는 제작 과정에 생성형 AI를 활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모든 상을 박탈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미 AI는 작가들의 수입원을 뺏고 있다. 권혁주 한국만화협회장은 “홍보 만화나 일러스트 등 외주 의뢰도 작가들의 중요한 소득원이었다”며 “이전엔 작가들에게 의뢰해야만 했던 홍보 만화를 이제 홍보 담당자가 컴퓨터 앞에 앉아 스스로 만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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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경쟁자 아닌 도구로 인식해야
AI의 일자리 약탈을 두고, 글로벌 리더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는 “AI가 사무직 일자리의 50%를 대체할 수 있다”며 화이트칼라 직종의 대규모 감원을 경고했다. 반면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모든 기술 혁명이 그렇듯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일단 어디까지 AI를 활용하도록 할 것이며, 이를 어떻게 명시할지 ‘명확한 기준’ 마련이 필요한 때라고 이야기한다. 권 협회장은 “눈과 손을 가진 AI가 원초적인 단계부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세상이 됐다”며 “피지컬 AI가 자체 체험으로 학습하는 시대가 오기 전인 지금 이 순간이 제도를 만들 때다. 지금 법을 세우지 못하면 창작자들은 협상 테이블 자체를 잃게 된다”고 했다. AI를 경쟁 상대가 아닌 창작 활동에 효율성을 부여하는 ‘도구’로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재호 앵커노드 대표는 “AI는 인간 능력의 ‘저점’을 올려주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창작계를 포함해 교육, 노동 등 모든 분야에서 AI가 어떻게 일의 형태를 바꿀 것이냐를 고민하고 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며 “어떤 분야든 핵심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고 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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