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농민들 ‘남태령’ 계기로 정치적 주체로 나서
‘증오정치 해도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윤석열 내란’ 끌어내
지방 사는 여성들 페미니스트 가시화 더 두려워해
지난 1월22일 부산 동아대 젠더어펙트 연구소를 겸하는 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태령 어젠다가 사라졌다고 할 때 페미니즘이나 차별금지법 얘기를 하지만 농민들이 왜 10여년간 트랙터 상경 투쟁을 하는지는 모르죠.” 권명아는 진보 진영에서도 농민들을 노동자라는 ‘정치적 주체’에 비해 미달하는 존재로 여겨온 점을 지적한다. 2015년 상경 투쟁 때 백남기 농민 사건이 불거지고도 ‘밥쌀 수입 금지’는 사회적 어젠다가 되지 않았다. “지금 농촌에서, 지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관심이 없다”고 했다.
“남성·세대로만 동질화할 이대남 있나”
반문 뒤 2030 여성들의 남태령 연대 의미를 짚었다. “전농의 투쟁을 ‘노동자성’이나, NL·PD 같은 오래된 ‘운동권 논의’로 보지 않는 새로운 시각이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 잡았다”며 “농촌이나 지역 문제를 기후위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관심도 늘고 확산력이 많이 생겼다”고 말한다. “(SNS에서 연대 등을 촉구한) 여성 농민들이 남태령을 계기로 전면적으로 자신들이 정치적 주체로 나섰다”고도 했다.
늘 폐과 위기에 있는 ‘지방대 인문학과’ 교수로 ‘대안 인문학 연구’를 이어가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주요 틀이 ‘지방’이다. 그는 “부산에 사는 여성들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가시화하는 것에 (서울, 수도권 여성들보다) 더 두려움을 느낀다. 소수이기 때문에 공격에 더 노출된다”고 했다. 그는 “여성들은 교차적으로 각기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2030 여성을 한데 묶는 일반화도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연장선에서 ‘이대남 논의’도 비판한다. “한국같이 계급 차이, 학력 차이, 지역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남성과 세대만을 가지고 동질화할 수 있는 그런 이대남이 존재하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을 구해왔다’고 말하는 상층 계급 가정의 부모를 둔 20대 남성은 자신을 지방 사는 하층 계급 20대 남성과 동질화하지 않아요.” 그는 “이대남 담론은 세대 내부의 지역, 계급, 특히 학벌에 따른 위계와 차이를 은폐한다. 이 담론은 40대 이상 남성 지식인들이 20대 남성을 계몽시키는 주체이자 정책 행위자의 헤게모니를 얻고 강화하려는 투쟁의 산물이자 알리바이”라고 했다.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가 지난 1월22일 부산 동아대에서 글쓰기와 공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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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파시즘, 일상화된 방법으로 내재
권명아는 지난해 말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갈무리)를 출간했다. 그는 “역사적 파시즘은 지금 우리의 현재와 멀지 않고 일상화된 방법으로 우리 안에 내재화돼 있다”고 썼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자기도 모르는 채 내면화된 차별 의식”이 그 예다.
윤석열의 반중도 ‘파시즘’과 ‘증오 정치’의 틀로 본다. 권명아는 윤석열이 2023년 10월12일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제73주년 장진호 전투 기념행사’에 참석한 점에 주목한다. 2016년 행사 시작 이래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참석했다. “중국이 한국의 외교 파트너나 경제적 파트너가 아니라 서로 전쟁 중인 상태의 적대자, 침략자의 자리로 상징과 표상과 의미를 바꾼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라는 적이 우리 안에도 침투해 있다는 공포와 적개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 게 선거개입론, 스파이 담론입니다. 파시즘 정치의 대표적 양태인 국체 투쟁을 한 거죠. 국가를 하나의 유기적 신체로 보면서 이 신체 안에 적대적 요소가 침입해 신체가 무너지고 오염되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권명아는 여성 혐오의 역사와 이어 설명했다. “윤석열 등 한국의 파시스트들은 ‘사회가 무너진다’는 식으로 침투되기 좋은 신체로 ‘국체’를 상상하도록 하는 서사를 작동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침투되는 신체로 오래 상상된 ‘여성의 신체성’이 동반됐고요. 국체가 여성화되었으니, 다시 남성화해야겠죠. ‘여가부 폐지’처럼 과도한 여성화 상태를 정화해야 하고, ‘이대남 전략’처럼 신체를 남성화하며, ‘침투한 중국인’ 같은 내부의 적을 정화해야 하는 거죠.”
권명아는 ‘증오 정치를 해도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끌어낸 것이라고 본다. 그는 “헤이트스피치나 증오 정치의 문제는 한국 사회 공통의 문제다. ‘뭐 그래도 되지’라고 하는 분위기가 고착화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헤이트스피치·차별 대응 제도를 만드는 일을 강조했다. “파시즘의 목표는 국가가 아무 제지 없이 개인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폭력의 직접성’을 사회를 대신하는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시민사회를 없애고, 인간을 ‘무사회적 고립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권명아는 “차별에 대해 제도적으로 대응이 안 된다는 건 사회가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진보정권, 계속 ‘나중에’로 미루기만
차별금지법 같은 제도는 “국가와 개별 존재 사이의 완충 지대”이자 “개별 존재 간의 연결망”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를 두곤 “진보 정권이 계속 ‘나중에’로 미루고, 개신교의 압력이 가시화되고, 민주당이 타협하고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상징 투쟁의 거점이 됐다. 어렵지 않은 일이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 어투를 패러디하자면, 그것도 못합니까? 네? 그것도 못하는데 무슨 실용 정부입니까?”
권명아는 읽고, 쓰는 사람이었다. 사전 질문지에만 6장의 답변을 보냈다. 그는 “글쓰기나 책 읽기 역량을 더 키우려면 점점 더 강도를 높여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현실에 개입하고 싸우는 무기도 결국은 글쓰기니까요.”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비정규직 강사 때 별명이 ‘여고괴담’이었다고 한다. 24시간 365일 밤마다 학교에 출몰해 붙은 별명이다. 지금도 휴일이면 연구실로 나온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든 사람은 아니다. 소수자들과 연대를 이어간다. 소통도 적극적이다.
지난 1월11일 갈무리 주최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 출간 기념 화상강연 때 그는 모든 질문을 다 받았다. 마지막 청자가 화면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권명아 교수 인터뷰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 [전문]‘노인과 바다’에서 ‘윤석열과 증오정치’까지···권명아 인터뷰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031749001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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