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공정경제 구현을 위한 과징금 유효성 제고방안에 관한 연구’(장우현·강희우)는 이러한 제도의 한계를 실증적으로 꼬집었다. 과징금 규모가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기업 규모가 클수록 부담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 지배력이 큰 기업일수록 과징금을 단발적 비용으로 흡수할 여력이 크며, 이는 반복 위반을 억제하는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 과징금이 불법 행위에 대한 제재라기보다, 사업 과정에서 감수 가능한 비용으로 인식될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 국내 처분 사례는 이러한 한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쿠팡의 경우, 납품단가 인하 요구, 광고비 전가, 대금 지연 지급 등 복수의 불공정 행위가 인정됐다. 그러나 거래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기록이 분산된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위반 금액을 정확히 특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 결과 행위별 법정 최고 한도에 해당하는 정액 과징금이 적용됐고, 최종 과징금 규모는 수십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시장 지배력 남용이 납품업체의 경영 안정성과 소비자 선택권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면, 제재가 충분한 억지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과징금 감경 제도의 운용 방식에 있다. 최근 몇년간 공정위는 자진신고 감면, 협조 정도 등을 이유로 상당한 규모의 과징금을 감경해왔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동일한 경제적 실체에 해당하는 기업집단이 반복적으로 위반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법인 분할이나 신설이라는 형식적 사유로 초범으로 간주돼 감경을 받은 사례도 나타났다.
해외 주요국의 제재 방식은 이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유럽연합은 우리의 관련 매출액이 아니라 기업집단 전체의 전 세계 매출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함으로써, 제재의 기대비용을 기업 규모에 비례하도록 설계한다. 담합이나 시장 지배력 남용과 같은 중대한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높은 부과율을 적용해 억지 효과를 극대화한다. 영국 역시 가장 중대한 경쟁 제한 행위에 대해 높은 출발 부과율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기업들이 위반 행위를 전략적으로 계산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미국은 담합 사건에서 기업의 이득뿐 아니라 가격 상승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까지 반영해 과징금을 산정하며, 일정 수준 이하로는 감경이 불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일본 또한 담합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행정청의 재량이 아닌 기속행위로 규정해, 법정 요율에 따라 기계적으로 산정하도록 함으로써 자의적 감경의 여지를 최소화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제재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위반 시 부담해야 할 기대비용을 명확히 높인다는 데 있다.
공정위도 최근 과징금 상한을 대폭 상향하고, 반복 위반 사업자에 대한 가중을 강화하겠다는 제도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과징금 상한 인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감경 사유가 폭넓게 유지된다면, 실제 부과 수준은 여전히 낮게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핵심은 위반으로 얻는 기대이익보다 적발 시 부담해야 할 기대비용이 구조적으로 더 크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과징금은 단순한 행정 제재가 아니라, 불공정 행위로 발생한 부당이득을 환수하고 시장 규율을 회복하기 위한 핵심 정책 수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반 금액 산정 역량을 강화하고, 감경 요건을 명확하고 엄격하게 제한하며, 동일한 경제적 실체의 반복 위반을 형식 논리로 회피할 수 없도록 제도적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 과징금 제도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예외적 감경보다 원칙적 집행이 우선돼야 한다. 과징금의 실효성은 숫자의 크기만이 아니라, 제재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보내는 명확한 규율 신호에서 비롯된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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