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04 (수)

    [공감]내가 주식 천재인가 싶을 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병원의 진료 대기실은 지루한 공간이다. 휴대폰 덕분에 견딜 수 있는데, 예전에는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사람이 가장 많았지만 요즘은 풍경이 달라졌다. 증권앱의 빨강과 파랑 화살표가 더 자주 눈에 띈다. 엘리베이터 안 환자와 간병인의 손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노부부의 입에서도 삼성전자와 현대차라는 말이 오간다.

    1년 전만 해도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넋두리가 오갔지만, 어느덧 코스피 지수는 5000을 훌쩍 넘어섰다. 외국인이 몇조원을 매도해도 이를 받아내는 개인 자금을 보면 ‘여기서 내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FOMO심리를 넘어 집단적 욕망의 거대한 흐름이 느껴진다. SNS에는 몇달 만에 큰 수익을 올렸다는 계좌 인증 화면이 즐비하다. 상승장이 계속되면 누구나 “나는 주식 천재인가 보다”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주식 투자를 시작하고 공부도 한다. 확신이 강해지고, 투자를 할 때마다 기대 이상의 수익이 따라온다. 처음에는 머뭇거리지만 점점 더 큰 돈을, 더 출렁이는 종목에 베팅한다. 그리고 더 큰 수익이 돌아온다. 몰랐던 재능을 뒤늦게 발견했다는, 이른바 ‘천재 인증’의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오래 투자해온 사람이라면 얼마 만의 상승장인지 안도하면서도, 속절없는 하락장의 괴로움을 알기에 달리는 말의 고삐를 더 단단히 쥔다. 반면 이번에 처음 투자에 나선 사람은 상승장의 결과를 자신의 능력으로 오인하기 쉽다. 그래서 예방주사처럼 알아두면 좋을 원칙들이 있다.

    일이 잘 풀리면 ‘성공은 내 능력, 실패는 환경 때문’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상승기에는 환경의 영향을 축소 판단하는 심리가 일반적이다. 그 결과 자신의 판단과 감정에 대한 과잉 확신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기분이 좋을 때에는 판단에 확신이 커지고, 단순하게 결정하고, 정보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위험을 감수한다. 그에 반해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우유부단해지고,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며, 사소한 정보에 집착한다. 상승장에는 무모한 투자가 늘어나고, 하락장이 시작되면 공포를 견디지 못해 투매에 나서 큰 손실을 확정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신체 컨디션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 서머타임이 시작되면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잠이 부족해 평소보다 컨디션이 떨어지기 쉽다. 실제로 서머타임 초기에는 개인 투자자의 주식 투자 수익률이 낮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투자 판돈이 늘어나는 것도 영향을 준다. 처음에는 여윳돈으로 적게 시작하지만 수익을 보면 더 큰 돈을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도의 한 마을에서 기억력과 집중력을 테스트하는 게임을 해서 상금을 주는 실험을 했다. 같은 게임을 세 집단으로 나눠서 진행했는데 상금이 4루피나 40루피일 때는 3분의 1의 대상자가 상금을 받았지만 한 달 생활비에 가까운 400루피를 걸고 하자 10%만 획득을 했다. 감당하기 힘든 판돈의 중압감이 판단력과 집중력을 흐릿하게 한 것이다.

    이렇듯 감정과 컨디션, 투자 규모 등이 모두 판단과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컨디션이 좋을 때 하고, 감정의 영향을 덜 받도록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충동적 결정을 줄이기 위해 일정 액수 이상의 거래는 휴대폰이 아닌 PC로 하거나, 중개인과 상의하고 결정하는 원칙을 만드는 것이 좋다. 오늘의 감정이나 주변의 말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물리적 장벽이 도움이 된다.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이해하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타고난 주식 천재는 없다. 전체 흐름을 운 좋게 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경향신문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