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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4 (수)

    [서의동 칼럼]남북관계, ‘두 국가론’ 말고 대안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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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만들겠다는 북한의 입장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202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처음 나온 ‘두 국가’론은 최고정책결정 회의체인 당대회를 거치며 제도화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9~25일 열린 9차 당대회에서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으며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남한의 진보 정부가 “음흉하게도 화해와 협력의 기회를 통해 우리 내부에 저들의 문화를 류포시키면서 그를 통한 그 누구의 변화를 꾀하고 나아가 우리 체제의 붕괴를 기도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현 집권 정권이 표방하는 유화적인 태도는 서투른 기만극이고 졸작”이라고 이재명 정부를 비판했다. 유감스럽지만 북한이 보기엔 윤석열 정부건, 이재명 정부건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두 국가론’을 제기하면서 한국의 진보 정부 역시 보수 정부와 다를 바 없이 북한에 ‘리스크’라는 인식을 표출해왔다.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먕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조선중앙통신 2023년 12월31일)

    2019년 2월 북·미 2차 정상회담이 무산(‘하노이 노딜’)돼 ‘서울을 통해 워싱턴’으로 가는 경로가 막힌 뒤 북한은 한국 문화가 코로나 만큼이나 심각한 체제 위협 요인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한국이란 존재로 인해 북한은 중국·베트남식 개혁·개방 정책을 펴기도 쉽지 않다. 개혁이 체제와 정권 불안정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에 흡수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북한에 한국은 물질적으로건, 비물질적 차원이건 ‘존재론적 불안’을 유발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한국과 절연하는 것이 ‘존재론적 안보’를 확보하는 안전보장 방안이 된다. 북한은 ‘투 코리아’가 국제적으로 인정될 경우 대일관계에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듯 보인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적대성보다는 남북 분립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적대성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에 남아 있는 ‘민족적 정념(情念)’을 끊어내기 위한 극약처방 성격이 짙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3·1절 기념사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론적으로는 타당하지만 북한 당국자들이 귀담아들을 제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북한의 본심은 정전체제건, 평화체제건 ‘한국과 어떤 식으로건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 당국자들이 비핵화와 평화를 한 세트로 거론하는 상황에서 ‘불가역적 핵보유국’을 자처한 북한이 한국과 대화하려 나설 이유도 없다. 일각에서는 오는 4월에 열릴 가능성이 있는 북·미 대화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미 대화에서 설령 핵동결과 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빅딜’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것이 남북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바늘구멍’보다도 작다. 한국을 거치지 않고도 미국과 거래할 수 있는데 구태여 한국을 쳐다볼 이유가 있겠는가.

    ‘하노이 노딜’ 이후 한국의 대북 정책이 동력을 잃은 채 관성으로 움직이는 동안,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질서의 격변을 활용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국제사회에서 이제 ‘한반도 비핵화’는 달성 불가능한 의제로 인식된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 검토해 대북 정책도 재설계돼야 한다. 앞으로 상당 기간 한반도에 전혀 다른 두 국가가 존재할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북한의 ‘두 국가’ 주장에서 적대성을 제거하고 보통의 ‘이웃국가 관계’를 제도화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본다. 이것은 한국에도 긍정적 효과가 꽤 크다. ‘북한 변수’가 제거되면 한국의 외교안보적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느라 치러야 할 ‘비용’도 줄어들게 된다. 한국 방위 대신 ‘대중국 무력화’하려는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국익적 관점에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이재명 정부가 ‘두 국가론’을 공식 수용하는 문제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결단 없이 남북의 현 상황은 달라지기 어렵다. 국내 제도의 수정까지 포함해 총체적인 남북관계 재건축 도면을 마련해 북한과의 ‘건강한 갈라서기’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임기 내내 대북 정책에 매달리라는 주문이 결코 아니다. 격변하는 국제질서에 한국이 국가 역량에 걸맞는 대외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도 한번은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경향신문

    서의동 논설실장


    서의동 논설실장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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