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내가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주식 계좌를 열었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넘기 직전이었다. 주식시장 정상화를 위한 상법 개정과 굳건한 정책 기조가 감지되자 나만 ‘벼락거지’가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해졌다. 또 주식과 연금 투자로 불평등한 세상에서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는 2030 여성 커뮤니티 ‘블루레이디’의 말에도 귀가 팔랑였다. 그들은 <자기만의 방>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 투표권과 돈 중에서 고백하건대 돈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던 말을 실제 삶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그 나이대의 나는 주식 동아리에 든 친구들을 멀리하며 돈을 불평등과 환경 파괴의 근원으로만 여겼다. 이제는 <진보를 위한 주식 투자> 같은 책도 읽지만, 타고난 팔자인지 도통 흥미가 안 생겨, 내 주식은 적금처럼 쌓여만 간다. 남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주가를 들여다본다는데 나는 만보기만 쳐다본다.
금붕어 똥만 한 액수일지언정 일임형 ISA 계좌도 아니고 투자도 전혀 모르니, 결국 좋아하는 주식만 샀다.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회사, 식물성 대체유 식품회사, 생분해 플라스틱 개발회사, 자전거와 철도 관련주를 골랐다. 반대로 전쟁으로 돈 버는 방산기업이나 위험한 원전산업, 도널드 트럼프 정권과 연결된 주식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산 주식은 보기에 꽤 괜찮았다. 할아버지께서 내 이름에 ‘금’자를 넣어주신 덕인지 지금까지 수익도 나쁘지 않다. 나는 전문 투자자와 강아지가 고른 주식 중 강아지의 수익률이 더 높았다는 연구를 믿기로 했다.
머니게임은 결국 돈 많은 사람이 유리한 구조다. 노동자가 주식 보유자가 되면 주가를 떨어뜨리는 파업을 노동자 스스로 반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식만 오르면 미국의 공습으로 이란의 초등학생 150여명이 죽든, 기후위기로 지구가 망하든 상관없는 사람들만 회사에 관심을 갖는다니 끔찍했다. 투자는 수익률의 문제인 동시에 가치관의 선택이기도 하다. 원전이 걱정된다면 두산에너빌리티를 피하고, 담배가 싫다면 KT&G를 사지 않을 수 있다. 전쟁에 반대한다면 록히드마틴을, 트럼프가 밉다면 팔란티어 주식을 피할 수도 있다. 주식 대신 재생에너지 수익 공유 플랫폼 ‘모햇’ 같은 펀드에 투자하는 길도 있다. 곳곳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연 8~11%의 이자를 제공한다.
‘화폐란 조폐창에서 찍어낸 자유’라고들 한다. 사람들이 ‘돈, 돈, 돈’ 하는 이유다. 그러나 존 러스킨은 “진짜 부자란 무엇을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 돈은 몹시 미미하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묻는다면 나는 투자 포트폴리오로 답하고 싶다. 나는 돈을 포기한 ‘돈포자’라서 이런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2028년부터 코스피에도 단계적으로 ESG 공시가 의무화된다고 한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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