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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 (토)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젊은 작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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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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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월이다. 지구촌 사방이 전쟁터지만 그래도 초중고, 대학에 신입생들이 입학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대학에서 회화나 순수미술을 전공한 친구들도 졸업을 했으리라.

    누군가는 대학원이나 유학을 가고, 극히 일부는 취업을 하고, 대부분은 백수도 작가도 아닌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중 누군가는 어찌어찌 모은 돈이나 빌린 돈으로 작은 작업실을 차리고, 먹고살 일을 따로 하면서 작업을 계속하리라 다짐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미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 여건은 많이 좋아졌다. 여러 가지 젊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 입주 제도, 아트페어, 전시 공모를 하는 갤러리들이 이곳저곳에 생겨 기회는 많아졌다. 그런 프로그램에 응모해서 발탁이 된다고 해도 뭔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시작일 뿐이다. 전시를 한두 번 한다고 세상이 갑자기 주목을 해주지도 않고, 미술관에서 불러주지도 작품이 팔리지도 않는다.

    한강에 내 젊은 시절의 얼굴이 물에 잠길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작품은 바로 그런 상태에 대한 일종의 자기고백이다. 작품의 배경은 1990년대 말 서울 관광엽서 가운데 한 장이다. 이 엽서는 열 장이 한 세트였는데, 다른 작품들에도 반복해 사용됐다.

    엽서들 중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았던 63빌딩과 한강이 인쇄된 엽서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때의 내가 물에 잠기기 직전의 상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가라앉지 않기 위해 물속에서 바삐 발을 놀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처럼.

    미술가로 산다는 것은 버티는 것이다. 버티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일이 일생을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내가 세상에 꼭 말해야 하는 절실한 것이 있느냐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게 확실하다면 다음으로는 그걸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쉽지 않아서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내 경험으로는 작가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수렁에 빠지는 것에 가깝다.

    뭔가 매력적으로 보여서 손가락을 담갔다가 손, 발을 집어넣고 온몸이 천천히 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먹고살아야 하는 절박한 생존의 문제와 작업을 해야 한다는 욕망과 의무감이 버무려져 함께 흐르는 수렁.

    작가로 살아가려면 그다음에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시대인지 좌표를 그려보아야 한다. 한 축은 일반적인 인간의 역사, 한 축은 미술의 역사, 또 한 축은 개인의 역사쯤 되겠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해 보이기는 한다. 그래도 작가가 되려면 피할 수가 없다. 자신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어떻게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지속적 열정과 반성하는 힘이다. 작가란 자신에 대한 믿음 없이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발전하고 전진하기 위해서는 반성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내 작업이 뭐가 문제인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위에 힘이 들더라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하다. 그 열정이 곧 재능이다. 젊은 작가들에게 너무 낡은 충고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다. 물론 내 말들을 무시해도 아무 상관 없다.

    강홍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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