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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6 (금)

    “농어촌 기본소득 받아 좋긴한데”…시골마을서 쓸 곳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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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장수군 읍내 식당가 외벽에 ‘농어촌기본소득 사용처’임을 알리는 노란색 홍보 배너가 걸려 있다. “장수의 내일을 위해 우리 지역을 살리는 착한 소비”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이 사업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체감하게 한다. 김창효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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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오전 전북 장수군 장수읍. 읍내 상가 골목에 걸린 ‘농어촌기본소득 가맹점’ 현수막이 겨울바람에 휘날렸다.

    “돈을 준다니 고맙긴 한데, 이걸 어디서 다 쓰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골목 앞에서 만난 주민 A씨(66)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주 그는 지역사랑상품권 15만원을 농어촌기본소득으로 처음 받았다.

    A씨가 다소 난감해한 이유는 지역사랑상품권 사용처(가맹점)가 지역별, 업종별로 일정 부분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장수군은 비교적 번화한 장수읍(306곳)과 장계면(211곳)에 가맹점들이 몰려있다. 반면 산서면(41곳), 천천면(32곳), 계북면(23곳) 등은 가맹점이 적다.

    같은 지자체라도 상대적으로 더 시골인 지역 주민들은 상품권을 쓰기 위해 읍내로 나와야 한다. 게다가 면에 거주하는 주민은 읍내 가맹점 이용 시 월 5만원까지만 쓸 수 있다. 주유소·편의점·하나로마트 등도 합산 월 5만원의 사용한도 제한이 있다. 예컨대 면 거주 주민은 읍내에서 점심 한 끼(1만원)를 해결하고, 약국에서 상비약(1만원)을 산 뒤 마트에서 3만원 가량 장을 보면 한 달치 읍내 가맹점 한도가 바닥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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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군의 한 농특산물 판매 부스에서 주민이 농어촌기본소득 카드를 이용해 결제하고 있다. 상인은 지역 상품을 정리하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으며, 부스 한편에는 장수군의 마스코트와 함께 ‘지역 주민 사용 가능’ 안내 문구가 보인다. 김창효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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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계면에서 장수읍으로 출퇴근하는 B씨는 “읍내에서 식사 몇 번만 해도 한도에 걸리는데, 퇴근 후 면으로 돌아가면 문 연 가게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금과면에 사는 C씨는 “읍내 병원에 다녀오고 장을 보면 5만원이 금세 넘어 결국 내 돈을 더 쓰게 된다”고 말했다.

    관내 도농격차가 더 큰 지자체일수록 가맹점 수 격차 역시 크다. 순창군은 전체 가맹점 1536곳 중 1081곳(70.3%)이 순창읍에 몰려 있다. 인계면(21곳), 금과면(20곳), 유등면(17곳) 등은 가맹점이 월등히 적다.

    홍보부족 등의 이유로 상품권이 막상 해당 지역에서 잘 돌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천천면에서 농업회사법인을 운영하는 정성희 대표(55)는 “판매장이 없어 판로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본소득 사용 가능 업체라는 홍보라도 제대로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북도는 이동 장터 운영과 3~5개 면을 묶는 권역형 소비 모델 등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시범 기간이 2년에 불과해 상인들은 “2년 뒤 사업이 끝나면 늘었던 소비가 썰물처럼 빠져나갈 텐데 과감한 투자를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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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이 소지한 농어촌기본소득 카드를 휴대용 결제 단말기에 꽂아 결제하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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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행 초기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들은 농어촌기본소득이 지역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양규삼 장수군 기본소득TF팀장은 “장수읍에 피자가게가 새로 문을 여는 등 그간 후퇴하던 지역 경제에 다시 활력이 돌고 있다”며 “창업 분위기도 조금씩 감지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장수읍 어울림센터 먹거리 장터에 입점한 이정민 카페 어울림 대표는 “입점 조건이 좋아 창업했는데, 마침 기본소득이 지급돼 기대감이 크다”며 “메뉴를 다양화해 지금보다 매출이 2배 정도 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농어촌기본소득 지급에 따른 인구증가 효과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장수군과 순창군 인구는 지난해 9월 4만7136명에서 같은해 12월 4만8636명으로, 석 달 사이 1500명 늘었다. 최근 수년간 자연감소가 이어졌던 흐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증가다. 장수군은 지난 12월 한 달 전입자가 607명으로 순창군(298명)의 두 배를 넘었다.

    오은미 전북도의회 의원(순창)은 “기본소득은 단순한 소득 이전 정책이 아니라 지역 재생 전략과 결합해야 효과가 난다”며 “사용 제한의 합리적 조정과 생활 인프라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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