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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6 (금)

    간송미술관장, 29억 횡령 의혹… 제작사엔 "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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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이 자신이 대표로 있는 법인 자금 약 29억 원을 개인 계좌로 유출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법인 자금을 제 3자의 업체에 송금한 뒤, 이를 다시 전 관장 개인 계좌로 되돌려 받는 일종의 '세탁' 방식이 동원됐다. 이 자금은 전 관장이 미디어아트 전시를 명목으로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으로 파악된다.

    전 관장은 지난 2024년부터 2025년까지 간송의 유물들로 미디어아트 전시를 진행했다가 현재 제작사들로부터 사기 등 혐의로 피소된 상태다. 전시 작품을 납품한 제작사 등에게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전 관장의 자금 유출 및 횡령 의혹이 뉴스타파 취재로 새롭게 불거진 것이다.

    전 관장의 자금 유출에 동원된 '제 3자'는 당시 전시 관계자 A씨다. 뉴스타파는 최근 이 인물을 만나 전 관장의 부당한 자금 이체 요구와 함께, 여러 제작사들을 위기에 몰아넣으며 미술계에서는 파문을 낳은 간송의 미디어아트 전시 이면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화보국' 간송와 문제의 전시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전형필 선생은 '문화보국', 즉 문화유산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일제강점기,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사들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는 전형필 선생의 장손인 전인건 관장이 간송미술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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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인건 간송미술관장.


    간송은 지난 2024년 8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미디어아트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이하 구달바별)’를 진행했다. 간송이 보관하고 있는 국보 등을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전시였다. 훈민정음 해례본, 신윤복의 작품 등이 참여형 영상 컨텐츠로 재탄생했다.

    그런데 이 전시를 둘러싸고 전 관장은 곧 여러 송사에 휘말리게 됐다. 전 관장이 전시에 영상 컨텐츠 등을 제작해 납품했던 제작사들에게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전시에 참여했던 제작사 5곳 가운데 4곳은 전 관장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4개 제작사들의 미지급 전시 대금은 약 13억 원. 이외에 전시 투자사 및 홍보 운영사 등이 제기한 소송 등을 더하면 전 관장에게 제기된 소송 금액만 47억 원이다.

    전시 총괄 관계자의 증언 "허위 제안서로 은행 대출"
    뉴스타파는 최근 기획 단계부터 이 전시에 참여했던 A씨를 만났다. A씨는 한 전시 기획사 관계자로, 전인건 관장과는 수년 간 업무로 알고 지낸 관계다. 문제의 미디어아트 전시의 경우 기획, 준비, 진행 등 거의 모든 단계에 A씨가 관여했다.

    A씨는 해당 전시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 2024년 2월쯤, 전 관장으로부터 전시 제안서와 견적서 등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전 관장이 금액을 콕 집어 제안서를 요구했다는 게 A씨의 말이다. A씨는 전 관장이 갑자기 한 법인(이하 H법인)의 로고를 전시 제안서에 써달라는 요구도 했다고 털어놨다.

    H법인은 전 관장이 대표이사로 등록되어 있는, 하지만 이 전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법인이었다. 전시는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전 관장의 또 다른 개인 회사인 KMM아트컨설팅에서 주관한 것이었다.

    의아했지만 A씨는 전 관장의 요구대로 상당한 분량의 전시 제안서와 견적서 등을 만들어서 전 관장에게 보내줬다. 2024년 2~3월쯤이다. A씨는 "전 관장이 은행에 제출하기 위한 제안서 작업을 해달라고 했었다"고 말했다.

    실제 전 관장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 성북동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H법인 앞으로 하나은행이 40억 8000만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H법인이 하나은행에 약 34억 원(채권최고액 120%로 추정)을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빌렸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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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부동산을 담보로 H법인이 하나은행에 대출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다.


    갑자기 이체된 수십억
    그런데 이 대출이 실행된 날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A씨의 통장으로 갑자기 수십억 돈이 이체된 것이었다. 입금자는 H법인이었다. H법인은 A씨에게 이날 10억 원씩 두 차례, 약 3억 5000만 원, 그리고 1억 원을 총 4차례에 걸쳐 송금했다. A씨는 "거의 30억 되는 돈이 그냥 입금됐었다"고 말했다.

    A씨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찰나 전 관장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전 관장은 A씨에게 자신의 여러 은행 계좌를 적어주며, 당시 A씨의 회사로 지급됐어야 할 금액이었던 약 2억 8000만 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돈을 자신의 계좌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해당 카카오톡 메신저에서 전 관장은 "하나은행으로 약 14억, 신한은행으로 3억, 우리은행으로 3억을 보내면 돼요. 그러면 OOO(A씨 회사)에 약 2억 8000만 원이 남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A씨는 이날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8차례에 걸쳐 해당 자금을 전 관장 개인에게 송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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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관장이 A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이 같은 계좌 이체는 3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A씨로부터 제공받은 계좌 입출금 내역을 보면, 2024년 5월 H법인은 A씨에게 6억 2000만 원을 송금했고, A씨는 6억 2000만 원을 그대로 전인건 관장에게 보냈다. 8월에는 1억 8000만 원이 H법인에서 A씨에게 입금됐고, A씨는 이 돈을 9월 전 관장에게 보냈다. 이렇게 H법인에서 전 관장으로 간 돈은 약 29억 원에 달한다.

    A씨는 전 관장에게 해당 자금에 대한 세금 처리 방안 등을 수차례 물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정상적인 자금 이동이었으면 증빙을 해줘야 되지 않냐"며 "계산서를 끊어주든, 영수증을 끊어주든 해야 하는데 (전 관장은) 그 요구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급기야 A씨는 전 관장에게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해당 내용증명에는 "귀하는 별다른 설명 없이 당사 계좌를 통한 자금 이체를 요청했고 당사는 이를 선의로 이행했다. 그러나 이는 법인에서 개인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자금 세탁 과정에 해당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당사는 법적 문제에 연루될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적혀있다. 전 관장은 A씨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는 취지의 간략한 답변을 보냈다.

    H법인, 페이퍼컴퍼니 의혹
    뉴스타파는 H법인을 찾아나섰다. 법인 등기부등본상 H법인의 소재지는 서울 방배동의 한 건물. 그러나 해당 건물에는 H법인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H법인을 제외한 다른 회사들만 입주해있는 건물이었다. 주소지만 있고 실체는 없는 페이퍼컴퍼니로 파악된다.

    정리하면, 전 관장은 자신이 대표 이사로 있는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전시 자금을 대출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A씨에게 해당 페이퍼컴퍼니의 로고가 담긴 전시 제안서와 견적서 등을 요구했다. 은행 대출이 실행된 날 전 관장은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A씨에게 약 23억을 보냈고, 이중 21억 원을 개인 계좌로 돌려받았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같은 방식으로 추가로 약 8억 원(6억 2000만 원, 1억 8000만 원)의 H법인 자금을 개인 계좌로 돌려받았다.

    피해 제작사 "사무실 정리했다"
    문제는 이 전시에 참여한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아트를 제작해 전시 작품을 납품한 제작사들은 전시 대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전 관장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인 프로덕션 쓰리헤드하트핸드 대표 이상훈 씨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저희(4개 제작사)가 받은 돈은 저희 수익금이 아니라 재료비의 25%에서 30% 뿐이었다. 그러니까 정말 택도 없는 금액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창피한 얘기지만 사무실을 정리했다. 직원들도 다 프리랜서 계약으로 돌렸다. 저희는 중소기업 정도의 회사라 이 정도 금액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사가 위태위태해진다"고 토로했다. 그는 "간송은 고미술계의 삼성 같은 재단이다. 간송이 갖고 있는 유물은 국가적으로도 큰 유물들"이라며 "그런 간송이 주관하는 전시인데 이런 미수가 발생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전시 기획사인 A씨 역시 간송 유물의 중요성 등을 보고 전시를 기획했다가 황당한 일에 휘말리게 됐다. A씨는 "제작사들도 기획 단계에서 제가 모은 회사들"이라며 "그런 회사들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돼 책임감이 들었다"며 제보 경위를 털어놨다.

    전인건 "사실과 달라" 이후 구체적 해명 없어
    뉴스타파는 전 관장에게 왜 페이퍼컴퍼니로 보이는 법인을 끌어들여 전시 자금을 대출받은 건지, 29억 원은 왜 개인 계좌로 돌려받은 건지 등을 물었다. 질의서를 받은 직후 전 관장은 기자에게 문자를 보내 "사실과 다른 것들이 많고 악감정을 갖고 일방적인 이야기를 하는 취재원 스토리와 선택적 자료만 들어온 듯 하다"며 "적극 소명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문자 이후 보도 당일까지 전 관장은 별다른 해명을 해오지 않았다.

    뉴스타파 강혜인 ccbb@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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