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떡볶이
부산 온천장 이면도로에는 가로등도 몇 없었다. 축축하고 어두운 길을 걷다 보면 작은 교차로가 나왔고 그 한쪽에는 늘 포장마차 하나가 있었다. 그곳에서 머리를 뒤로 동여맨 중년 여자가 구부정하게 앉아 떡볶이와 어묵·튀김 같은 것을 팔았다. 포장마차의 환한 불빛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매번 퉁퉁 불은 어묵 한 꼬치나 닭 염통꼬치 하나를 먹었다. “이것도 묵을래? 못 파는 긴데.” 그런 나를 보고 여자는 여러 번 짧게 잘려 팔 수 없게 된 떡볶이를 건져내 먹으라고 주곤 했다. 흐물흐물하여 풀어지기 직전의 떡이라도 나에게는 충분했다. 오래지 않아 그녀가 반 친구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여자의 얼굴이 왜 그리 낯익게 느껴졌는지도 납득이 됐다.
서울 종로구 ‘대접 광화문 만두’의 옛날 떡볶이.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세종문화회관 뒤편, 고요하고 점잖은 내수동 오피스텔 상가에서, 와인만 파는 식당에서 떡볶이를 만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서울 경찰청 앞 사직단으로 올라가는 길은 한적했다. 경찰청 건물이 주는 위압감과 안도감 덕분인지 아니면 조금씩 떨어지는 봄비 탓인지, 여느 때보다 더 거리가 차분하게 느껴졌다. 경찰청 사거리에서 조금 더 길을 걸어 올라가자 노란 불빛이 환하게 비쳐 나오는 식당 하나가 있었다. 입간판을 얌전하게 세워둔 그 집의 이름은 ‘대접 광화문 만두’였다. 건장한 중년 남자 둘이 홀과 주방을 나눠 지켰다. 손님을 받는 모양새가 능숙함을 넘어서 유려했다. 손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이미 떠날 때의 모습까지도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밥집보다는 카페에 온 듯 실내가 깨끗했다. 이른 저녁이었는데 이미 몇몇 사람이 앉아 와인잔을 부딪쳤다.
일행이 도착하고 주문을 넣었다. 홍시와 발사믹 식초로 맛을 낸 알배추 샐러드가 시작이었다. 호두·아몬드와 같은 견과류에 오렌지·치즈·알배추를 썼다. 절제된 신맛은 재료 뒤편에 서서 서로를 이어줬고 푸근한 단맛은 혹여나 있을 수 있는 견과류와 채소의 쓴맛을 넉넉히 감싸줬다. 한돈 냉수육과 야채무침은 간결했지만 맛에 빈틈이 없었다. 냉수육은 특성상 잡맛이 배기 쉽다. 원물이 좋지 않다면 감출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잘 벼린 칼로 얇게 자른 냉수육의 자태만큼 고기의 달고 고소한 맛만 남아 있었다. 식은 비계는 쫀쫀하게 씹는 맛이 있었고 살코기도 질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 편이 들뜨거나 독하지 않은 와인과 더 잘 어울렸다.
마늘종 고추튀김은 큼지막하게 튀겨 섬세하게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독한 매운맛은 빼고 마늘종의 달고 매콤한 기운과 돼지고기의 기름진 단맛만 잘 추려서 아삭한 고추 안에 들어가 있었다. 칼로 다진 듯 이에 씹히는 감각이 톡톡거렸던 만두는 공장에서 만든, 이겨지고 짓이겨진 완자 같은 질감의 것이 아니었다. 도톰한 만두피와 힘을 겨루듯 울룩불룩 근육처럼 가득 들어찬 소가 만두라는 팽팽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주물 냄비 가득 주홍색 떡볶이가 나왔을 때 익숙한 냄새와 모습에 30여 년 전 풍경이 들이닥쳤다. 매끈한 밀떡은 혀와 이에 닿자마자 작은 물고기처럼 파닥였다. 채소와 멸치를 끓여 낸 육수는 그윽하고 아득하게 맛의 지평을 저 멀리로 끌고 나갔다.
식당에서 어린 축은 부모와 함께 온, 그나마 대학생이 된 자녀가 전부였다. 모두 저녁이 되면 몸을 움직이기보다 뒤로 기대고 찬찬히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편한 나이대였다. 그들 모두 떡볶이를 먹을 때는 포장마차 앞에 서서 어깨를 비비고 엉덩이를 밀쳐가며 하하호호 너와 세상 앞에 나를 들이밀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손님들 곁을 조용히 돌아보던 주인장은 눈매가 매서워 무사 같았지만 “맛은 어떠세요?”라고 물을 때는 공손하고 사람 좋은 마을 이장 같았다.
예전 그 포장마차 주인장이 어머니라는 것을 알려준 것은 친구 자신이었다. 어머니가 반 친구 같다며 여러 번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나는 “그럼 공짜 좀 더 주라고 해라”라고 농쳤지만 한 번도 포장마차에 서서 친구 이름을 팔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포장마차가 늘 너무 늦은 밤까지 불을 켜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접 광화문 만두: 냉수육 야채무침 3만2000원, 마늘종 고추튀김 2만원, 옛날 떡볶이 2만2000원, 만둣국 1만9000원, 0507-1345-5765.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