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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 (토)

    직선을 버리니 봄의 속삭임이 들렸다… 남산에서 마주한 ‘천천히’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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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말]

    사람도 자연도 모두 품은

    남산의 새 얼굴 ‘하늘숲길’

    조선일보

    남산의 새 얼굴 '하늘숲길' 지도.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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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기운 물씬한 지난 1일, 본지 사회부 취재팀이 서울 남산의 새 산책로 ‘남산 하늘숲길’을 찾았다. 하늘숲길은 작년 10월 남산 남쪽 기슭에 개장한 1.45㎞ 덱(deck) 길이다. 아직은 아는 사람만 아는 남산의 ‘비밀 통로’ 같은 곳이다. 하늘숲길이 시작하는 소월정원에는 김소월의 ‘산유화(山有花)’ 시비(詩碑)가 서 있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남산 하늘숲길’의 시작을 알리는 조형물 위에는 낯익은 까치 한 마리가 앙증맞게 앉아 있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 등장하는 까치 ‘서씨’ 캐릭터를 닮았다. 케데헌 덕분에 남산엔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첫걸음을 내딛자마자 바람결에 풀내음이 묻어왔다. ‘하늘숲길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 가득한 시민들도 잔뜩 모였다. 곳곳에서 아이 뛰노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숲길은 한겨울 적막을 깨고 이제 막 봄의 숨결을 틔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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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하늘숲길의 시작점인 소월정원에 있는 ‘남산 하늘숲길’ 조형물.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덱 길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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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자연 모두 행복한 지그재그 ‘4.6도’ 숲길

    요즘 남산에서 가장 핫한 산책로는 단연 하늘숲길이다. 작년 10월 개장 이후 4개월 만에 방문객이 24만4000명을 넘었다.

    사실 그간 남산을 오르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거나 버스와 자전거가 뒤섞인 순환로를 아슬아슬하게 걸어야 했다. 재작년엔 남측순환로 커브길에서 버스가 넘어지는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 하늘숲길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길이다. ‘노인, 어린이, 장애인도 편하게 남산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분명 산을 오르고 있는데 발끝에 전해지는 감각은 평지를 걷는 듯 경쾌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부터 유모차를 미는 부부, “저기까지 누가 먼저 가는지 내기하는 거야”라며 달리기 경주를 하는 부자(父子)까지. 누구나 편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비결은 4.6도. 덱 길의 경사가 4.6도를 넘지 않게 설계한 덕분이다.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끌고도 부담 없는 경사다. 이 각도를 맞추기 위해 길은 자연이 만든 산을 따라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그래서 하늘숲길은 느리다. 그 덕분에 느릿느릿 숲 사이로 부는 바람과 나무 냄새를 충분히 느끼며 걸을 수 있다. “하늘숲길은 그저 산책로 몇 개를 더 추가하자는 기획이 아니었습니다. 시민 모두가 남산의 비경을 누릴 수 있게 ‘수평 등산로’를 낸 겁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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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하늘숲길은 철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 덱을 깔아 만들었다. 경사가 4.6도를 넘지 않아 누구나 걷기 편하다. 이 각도를 맞추기 위해 길은 지그재그로 산을 올라간다(위 사진). 남산에 있던 나무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길 곳곳에 구멍을 뚫었다. 나무가 길을 뚫고 나와 자라는 것 같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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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가 있으니 디테일이 보였다. 하늘숲길은 한국의 여느 덱 길과 다르다. 길의 폭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곳은 넓고 어떤 곳은 좁다. 좁은 곳엔 어김없이 나무나 돌이 서 있다.

    도저히 나무를 피해갈 수 없을 땐 길에 구멍을 뚫었다. 그래서 덱 길을 뚫고 나온 듯한 나무가 곳곳에 있다. 어떤 나무는 난간 품에 안긴 채 자라고 있었다. 건축가는 그 나뭇가지의 두께만큼 난간을 잘라냈다. 어지간한 정성이 아닐 수 없다. 일정한 폭의 침목을 이어 붙여 ‘사람 다니기 좋게 만든’ 덱 길만 본 기자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빙 돌아가는 모양의 길도 있다. 기하학적인 기교인가 싶었는데 길 안쪽에 단풍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걷다 보면 덱 바닥에 붙여 놓은 발바닥 모양 스티커를 만날 수 있다. 나뭇가지에 부딪힐 수 있으니 돌아가라는 표시다. 동시에 세월의 풍파를 수십 년간 견뎌온 남산의 진짜 주인을 돌아보라는 다정한 권유이기도 하다.

    이 길은 등고선을 따라 철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 덱을 깔아 만들었다. 흙과 벌레, 거름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이라고 한다. 사람은 시야가 높아져 나무 밑동 대신 나뭇가지와 푸른 잎을 보며 걸을 수 있다.

    건축가의 철학은 사람과 자연을 모두 살리는 것이었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자연을 깎아내는 대신, 자연의 흐름에 사람이 스며드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일직선으로 덱을 놓으면 공사가 편했겠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 건드리지 않고 온전히 두는 게 목표였어요. 그랬더니 길이 정말 ‘인간적’이게 됐습니다. 나무 곁을 돌아가며 자연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됐습니다.”

    하늘숲길을 설계한 강병근 서울시 총괄건축가의 말이다. 그는 이 길을 내기 위해 2023년 봄부터 수십 번 남산을 오르내렸다고 했다. 어디로 길을 낼지 고민하며 나무 기둥에 가느다란 끈을 묶어뒀다고 한다. 길을 걷다가 나무 기둥에서 희미한 끈 자국을 발견했다면 바로 그 흔적이다.

    이 스토리는 손바닥만 한 작은 표지판에 수줍게 쓰여 있다. 눈을 부릅뜨고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만든 사람의 이름을 빼곡히 써넣는 여느 준공 표지석과 달리 이름도 쓰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하이 라인’이 떠올랐다. 버려진 고가 철로를 걷기 좋은 산책로로 바꾼 것이다. 하늘숲길도 그 길처럼 잘 만든 건축 작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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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숲길에서 만날 수 있는 ‘곤충 호텔’은 폭설에 쓰러진 나무를 활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하늘숲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나무집이 나타났다. 벽돌과 나무토막, 건초 등을 켜켜이 쌓아 만든 ‘곤충 호텔’이다. 안내판에는 ‘남산의 설해(雪害) 피해목을 재활용해 새와 곤충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한 문장 더. ‘안내판은 남산 소나무로, 쓰러진 나무를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길 따라 만나는 8개 전망대

    하늘숲길을 100% 즐기고 싶다면 길을 따라 곳곳에 숨어 있는 전망 포인트를 놓쳐선 안 된다. 모두 8곳이다. 어느 하나 평범한 곳이 없다. 어떤 전망 포인트는 살짝 숨겨져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無)장애’ 길을 고집하는 하늘숲길에서 계단이 놓인 샛길을 발견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올라가 보자. 그 끝에는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서울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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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0도로 탁 트인 ‘솔빛 전망대’에 오르면 서울과 남산 숲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첫 번째 전망대인 ‘느티나무 전망대’는 소월정원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전망대를 뚫고 나온 듯 서 있다. 원래 있던 느티나무를 그대로 살려 전망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무 위에 지은 집’처럼 아늑해 보인다.

    전망대에는 뒤로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는 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의자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바람에 흔들리는 느티나무 가지 옆으로 회색 빌딩 숲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발길을 좀 더 옮기면 ‘솔빛 전망대’가 나타난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360도로 탁 트인 동그란 전망대가 나온다. 높이가 7m다. 나무 꼭대기에 서서 서울과 남산을 내려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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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 전망 다리’에서 바라본 ‘바람 전망 다리’의 모습. 하늘 높이 자란 메타세쿼이아 아래로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이 작게 보인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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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함께 하늘숲길을 찾았다면 ‘모험 전망 다리’와 ‘바람 전망 다리’를 놓치지 말자. 메타세쿼이아 숲 아래 나란히 놓인 다리다. 모험 전망 다리는 출렁다리다. 아이들이 출렁다리를 오가며 작은 스릴을 만끽하는 동안 가족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건너편 바람 전망 다리를 찍어보자. 하늘 높이 자란 메타세쿼이아 아래로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이 작게 보인다. 하늘숲길에서 인기 있는 포토존 중 한 곳이다.

    3월 중순 가장 인기를 끌 전망대는 ‘벚나무 전망대’다. 벚나무 아래에서 경치를 보며 쉴 수 있다. 아직은 앙상한 가지에 꽃망울을 숨기고 있다. 분홍빛 꽃비가 내리는 날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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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서울 남산 하늘숲길의 ‘노을 전망대’. 해 질 녘 서울 하늘이 노랗다. 멀리 여의도가 보인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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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길의 클라이맥스는 20분가량 산책한 끝에 등장하는 ‘노을 전망대’다. 들어서는 순간 탁 트인 풍경에 놀라게 된다. 멀리 여의도와 한강이 보인다. 노을 전망대는 이름처럼 해 질 녘에 맞춰 가야 한다. 서울의 따뜻한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시부야 스카이’ 전망대처럼 뾰족한 모양의 전망대 끝 부분이 살짝 솟아 있다. 그 끝에 서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전망대 유리 난간에는 물방울 모양 스티커가 촘촘하게 붙어 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부딪히지 말라고 붙여놨다고 한다. 노을 전망대는 야경도 아름답다.

    산책로의 끝자락에 있는 소나무쉼터는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서 쉴 수 있는 곳이다. 고개를 들면 나무 사이로 남산서울타워가 보인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어보자. 그 옆에는 건강정원이다. 간단한 운동 기구가 있다. 하늘숲길의 종착지다.

    여기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도 되고 내친김에 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나무 계단을 따라 15~20분 더 올라가면 남산서울타워에 갈 수 있다. 이 길은 하늘숲길보다 가파르다. 다만 눈앞에 남산서울타워가 있어 여행자의 의욕을 자극한다. 남산서울타워 밑에 있는 북측 전망대에 서면 북한산과 서울 도심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옆에 선 태국인 관광객이 “대도시에 이렇게 멋진 산이 많은 건 처음 본다”고 했다. 서울은 산이 있어 더 특별하고 살 만한 것 같다.

    건강정원에서 용산구 해방촌으로 내려가는 사람도 꽤 있다. 다소 급한 계단 길을 걸어 내려가면 해방촌 신흥시장이 나온다. 신흥시장은 도시재생 프로젝트인 ‘클라우드’를 통해 살아난 전통시장이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고 구름처럼 생긴 투명 플라스틱 지붕을 씌웠다. 요즘 2030 사이에서 인기 있는 데이트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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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서울 남산 하늘숲길에서 만난 쇠딱따구리. 부지런히 나무를 쪼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길

    하늘숲길을 누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유모차를 끄는 가족이나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남산공원 주차장이나 남산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하늘숲길을 즐기면 편하다. 다만 평일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아침 일찍 들러야 여유가 있다.

    지하철 서울역이나 시청역에서 402번 시내버스를 타거나 지하철 이태원역·한강진역에서 405번 시내버스를 타면 바로 소월정원 앞에 내릴 수 있다. 서울역이나 회현역에서 걸어가는 방법도 있다. 10분 남짓 걸으면 남산공원 입구에 닿는다. 한양도성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백범광장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나온다. 조금만 더 가면 소월정원이다. 이 길은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다만 오르막이 꽤 높은 편이다.

    남산서울타워 근처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간 뒤 하늘숲길을 내려오는 루트도 있다. 충무로역이나 동대입구역에서 01A번이나 01B번 버스를 타면 남산서울타워 근처까지 갈 수 있다.

    하늘숲길을 걸을 때 가장 어울리는 마음가짐은 ‘천천히’다. 천천히 걸으면 비로소 숲의 소리가 들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 지저귀는 새 소리. 평소 듣기 어려운 소리다. 하늘숲길에선 숨이 차오를 일이 거의 없는데도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다. ‘여기서도 숲을 한 번 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잠깐 앉아 고개를 들면, 같은 나무가 다른 표정으로 보인다. 작은 준비가 필요하다. 하늘숲길에는 쓰레기통과 화장실이 없다. 물 한 병과 작은 쓰레기봉투 한 장을 챙겨보자. 나무 사이를 오가는 바람처럼 스윽 지나가야 멋진 길이 오래간다.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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